지안 보며 말을 건네는 선주. ⓒ최선영

“너희들 때문에 살았어.”

선주는 지영에게 수없이 했던 말을 이번 설에도 또 건넵니다.

“지영이가 태어나고 돌이 될 무렵이었어. 네가 다섯 살이고.”

엄마는 설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 책장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 앨범을 찾았습니다.

“분명 여기다 꽂아두었는데 어디 갔지?”

“엄마, 안방에서 본 것 같아요.”

지영이 주방 베란다에서 나오며 엄마를 향해 말합니다.

“아... 저번에 너희 아빠랑 꺼내보고 거기다 두고는 내가 깜빡했네.”

지영이 쪼르르 달려가 앨범을 꺼내 엄마 손에 들려주었습니다.

빛바랜 사진들이 시간을 따라 가지런히 꽂혀있는 앨범 속에는 유난히 활짝 웃는 엄마의 예쁜 모습이 담긴 사진이 보입니다. 평소보다 더 화려한 옷을 입고 화장도 짙게 한 엄마는 지안이와 지영이를 꼬옥 겨안고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정말 두려웠어. 너희들 두고 내가 가게 될까 봐.”

밤마다 느껴지는 깊은 통증 때문에 엄마는 여러 날을 뜬눈으로 밤을 지냈습니다.

지안이와 지영이를 봐줄 사람이 당장 없어서 미루고 미루던 병원을 갔던 것은 선희가 방학을 하고 내려온 뒤였습니다.

“아니, 언니~ 형부는 언니가 이렇게 아픈데 병원도 같이 안 가고 뭐 하신대?”

"너 형부 바쁘잖아. 아프다 소리도 안 했어. 괜히 일하는 사람 걱정시켜 뭐 하니.”

선주는 늘 바쁜 민호를 생각하느라 자기의 삶은 반쯤 포기하고 사는 사람 같았습니다.

“혼자 가도 돼?”

“그럼~애들이나 잘 봐줘.”

“응 걱정 말고 다녀와.”

선주는 지안이와 지영이를 선희에게 부탁하고 병원을 향합니다. 걱정을 싣고 옮긴 걸음이 집으로 돌아올 때는 걱정에 두려움까지 더해져 몹시도 무거웠습니다.

“지안이를 두고 암이라니... 지영이 아직 돌도 안됐는데...”

엄마는 아이들 걱정에 울고 또 울었습니다.

아이들과 사진을 찍는 선주. ⓒ최선영

수술을 앞두고 엄마는 지안이와 지영이를 안고 카메라 앞에 앉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은 엄마를 아름답게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이 사진이 아이이들과 마지막 컷이 되지 않기를 기도하며.

“지안아 미안해. 미안해. 엄마가 정말 미안해.”

선주는 지안이를 안고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합니다. 선주의 잘못으로 지안이가 장애인이 된 것 같아 늘 그녀의 마음은 죄책감으로 울고 있습니다. 사고 때문에 지안이 다리가 불편해지고부터 선주는 절대 운전을 하지 않습니다.

“엄마가 우리 지안이 다리가 되어주려고 했는데... 엄마 때문에 지안이가 장애인이 된 것도 미안하고 이렇게 암까지 걸려 곁을 지켜주지 못하는 것도 미안해.”

아직 돌이 되지 않은 어린 지영이를 보면 마음이 아프지만 장애인이 된 지안이를 두고 수술실로 들어가는 것이 더 큰 고통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 잘 부탁해요.”

“수술만 받으면 괜찮은데 왜 그런 소리를 해. 미안해...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너무 소홀했어. 다 내 탓이야.”

민호는 선주를 안아주며 위로해 주었습니다.

“엄마, 수술 잘 받고 오세요. 빠이빠이.”

아무것도 모르는 지안이는 선주를 향해 손을 흔들며 함박웃음을 보냅니다.

“그래 지안아, 엄마 꼭 살아서 돌아올게. 꼭 살 거야. 꼭.”

선주는 수술을 받던 중에 위험한 고비도 있었지만 잘 버텨주었습니다.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의 힘든 시간을 지나고 식이요법을 하며 살기 위해 바둥거리며 살아냈습니다.

지안이가 열 살이 되던 해 5년간 별다른 이상이 없었기에 완치 판정을 받고 다시 카메라 앞에 앉습니다.

“네가 없었다면 젊은 나이에 암이라는 판정을 받고 낙심하고 수술을 해보지도 않고 포기해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 지안이 지영이 때문에 엄마는 살고 싶었고 살기 위해 수술을 받고 그 이후에도 심하다 싶을 만큼 건강에 신경을 많이 썼단다. 고맙다 얘들아 너희들 덕분에 엄마는 살았어.”

“엄마, 이게 제가 다섯 살 때고 이건 열 살 때죠?”

“그래, 엊그제 같은데 벌써 25년 전이네...”

“저희들 곁에 있어주셔서 감사해요.”

“엄마가 더 고맙지.”

설날 아침 온 가족이 둘러앉아 떡국을 먹고 다시 카메라 앞에서 함께 하는 오늘의 행복을 남깁니다.

활짝 웃는 가족. ⓒ최선영

“지안이 다리가 불편해지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 앞섰는데... 이렇게 좋은 선생님이 되어 세상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엄마는 그저 대견하기만 하구나.”

선주는 지안이가 비장애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된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그것뿐인가... 결혼 30주년이라고 여행까지 보내주는 멋진 딸이지.”

민호도 지안이를 안아주며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2월 14일은 선주와 민호의 결혼기념일입니다.

지안이 설 선물과 결혼기념일 선물로 해외여행을 보내드리기로 했습니다.

선주는 여행 가방에 25년 전 아이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넣었습니다. 그날 수술을 받다 죽었다면 이런 행복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단 하나의 이유를 주었던 지안이와 지영이가 고마웠습니다.

지안 지영과 사진을 찍는 선주 ⓒ최선영

“너희들 때문에 살았고 너희들이 있어서 행복하구나.”

여행을 떠나는 공항에서 선주는 그날처럼 지안이와 지영이를 안고 사진을 찍습니다.

행복한 미소를 가득 머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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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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