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얘기하라니 승일만 떠오른다. ⓒ이상호

회 한

행지는 거제도 지주의 딸이었다. 아버지의 땅은 넓고도 넓어 어린 시절, 온 종일을 뛰어 놀아도 그 끝에 닿지 않았다고 했다. 유복한 가정이었으니 부족한 것이 없었다. 다만 어머니가 두 분이었다. 지금이야 난리가 날 일이고 낙인이 찍힐 일이지만 당시 그 정도 자산가이면 이런 짓이 통하는 시대였다.

남편을 잃어 홀로돼 마땅히 생존을 이어갈 방법을 찾지 못했던 동네 아낙은 소일거리를 해결하며 왕래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아낙은 집안에 살림을 차리게 되고 아낙에 대해 어미의 예를 갖추라는 아버지의 명을 듣게 되었다. 아낙은 아버지의 아내이었을지는 몰라도 행지에게는 생전 처음 마주치는 낮선 사람이었을 뿐이다. 어찌 된 일인지 행지의 친모조차 잠깐의 저항(?)만 있었을 뿐 그것은 곧 집안의 질서가 되 버렸다. 행지는 그날 이후 가족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 곧 대학을 가게 되니 기필코 집을 나오리라 마음먹었다. 학교는 생전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정했다. 물론 아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합격 통지가 도착하고 알게 되었지만 한 달을 넘게 곡기를 끊는 딸의 독기 앞에 그는 그녀를 놔 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후 그녀의 유일한 가족은 수컷에 불과한 아버지를 두고 있는 친모 밖에 없다고 했다.

그녀는 가난한 거제도 장학생이 되어 있었다. 학우들은 홀로 자취를 했고 어머니가 꾸려가는 농사로 겨우 학교를 다니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동양학과였으니 작업실이 필요했고, 허름한 농가를 빌려 몇몇의 학우들과 집을 개조해 작업실과 침식을 함께 해결했다. 집이라기보다는 마구간에 가까웠다. 가난한 대학생이었으나 수컷이 부쳐주는 돈은 항상 차고 넘쳤다. 아비에 대한 상처는 깊고도 깊어 어렸을 적부터 행지는 평안을 찾을 수 없었다. 유일한 낙이라고는 오로지 술이라 했다. 나이에 비해 동안이었던 행지에게 왠지 어울리지 않은 일이었다. 낮에는 대학생이었고 밤에는 화류계를 꽉 잡았던 그녀의 이중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은 대가는 컸다고 한다. 행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그녀의 학원은 중부권, 소비도시였으니 놀 곳은 충분했다고 했다. 모든 사람에게 그녀는 냉정했다. 아비가 수컷으로 변한 이후 인간에 대한 예의는 내성과 심안사이에서 갈 곳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차라리 끈적거리는 소비도시의 밤의 길목에서 마주쳤던 건달들이 편했다고 했다.

따뜻한 달빛

승일은 농민의 아들이었다. 아비와 어미가 농민이었고 그의 삶의 출발과 끝이 땅이 되는 것은 어려서부터 당연한 귀결인줄만 알고 있었다. 가난했지만 내내 행복한 어린 시절이었다. 들에 나가 일을 해야 했던 어미는 승일을 업고 논일을 나갔다.흙을 주워 먹고 논두렁에 빠지기도 하고 그렇게 배가 고플 즈음이면 어미가 다가와 젖을 물려주곤 했다.

소와 함께 밭을 갈던 아비는 이런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곤 했다. 아비와 어미, 승일이 일을 마쳐 귀가하는 길은 해가 내려와 땅을 붉게 물들였다. 땅이 어미인지 어미가 땅인지 알 수 없으나 곡식과 젖을 내어 승일을 키웠던 땅은 승일에게 당연히 농민이 되라 속삭였다.

승일은 전국에 몇 안 되는 농과 대학을 뒤져 대학에 진학했다. 아비는 승일의 합격통지를 받던 날,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아 잔치를 했다. 승일은 졸업만 하면 아비와 어미를 모시고 행복한 삶만이 존재하는 줄 알았다.

승일은 참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만담과 민요, 풍물에 그가 있는 학생회는 웃음이 떠날 줄을 몰랐다. 민요를 참 멋스럽게 부를 줄 아는 이였다. 제법 돈이 있는 학우들이 다니는 예술 대는 승일의 놀이터였다. 밥과 술이 해결되고 운이 닿으면 농대에서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여 학우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행복

그렇게 승일과 행지는 만났다. 승일만큼 여 학우들에게 서비스 정신이 투철한 이는 없었다. 늦은 새벽 귀가 길은 위험했다. 동네 건달과 어두운 청소년들이 여 학우를 노리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곤 했다.

밤늦도록 작업에 몰두하고도 교내에서 잠을 잘 수 없는 여 학우들은 마땅한 귀가 방법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는 했다. 승일은 밥과 술을 해결해주는 여 학우들이 자신에게는 없는 여동생 같기도 하고 누이 같기도 했다.

집이 가난하니 자취방을 구할 수 없었던 승일은 가족을 보러 가는 방학을 빼고 예술대에서 생활했다. 동아리방 한 구석에 칸막이를 치고 의자 몇 개를 이어놓고 잠을 청하곤 했다. 귀가 길을 기다리는 여 학우들을 성실하게 배웅했다. 한쪽 어깨에 자신의 키만한 쇠 파이프를 이고 말이다.

넉살을 담아 밥과 술을 해결했지만 거의 때를 놓치지 않고 일부러 승일을 찾아와 밥을 챙겨주는 예술 대 학우들이 고맙기도 했으니 귀가 길 배웅은 승일에게는 당연히 치러야 할 의무였다.

웬만한 여 학우들은 다 알고 있었던 승일에게 행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밤만 되면 화류계 생활을 하던 행지였으니 볼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눈이 심하게 내린 교정은 인적이 드물었다. 일찌감치 학우들은 학원을 빠져나갔고 교정은 을씨년스럽게 고적함을 더 해갔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던 승일은 어디선가 울음소리를 듣게 되었다.

술에 만취한 여자 하나가 눈밭을 뒹굴며 욕을 헤 데고 있었다. 동네 고삐리 하나가 주정을 부리는 가 싶어 쥐어박을 생각으로 나갔으나 너무 취한 그녀를 어쩔 수 없어 동아리 방으로 데려와 뉘여 주었다.

‘아, c-8! 이제 고삐리들 까지 지랄을 하는 구나!’

그나마 의자까지 빼앗긴 승일은 바닥에서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그녀는 없었다.

‘망할 년! 고맙다고 인사는 하고 가야 되는 것 아닌가!'

그 날일을 까맣게 잊고 지내던 어느 늦은 밤. 술이나 한잔 얻어먹을 까 하는 심산으로 어슬렁거리던 중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동아리 방에 승일은 멈춰 섰다.

족발과 닭을 앞에 놓고 수다 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대충 웃겨주고 술이나 얻어먹자 라는 생각이 떠 오른 승일은 방안에 들어섰다. 그 곳에 행지가 있었다.

“어! 그 때, 그 고삐리!”

“야, 고삐리가 아니라 동양학과 후배다. 얘가 그날 술이 너무 취해 인사도 못했다 하더라. 인사해라.”

선배의 권유에 인사는 했으나 승일은 행지가 마땅치 않았다. 그 시간에 술이 떡이 된 것도 그렇지만 옷차림과 비싼 택시를 탄 것 등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눈이 내리고 간식과 술이 넘쳐나니 한판 놀아볼 생각으로 만담이며 노래, 춤까지 동원해 밤을 지새웠던 그 날은 동아리 방에 함께 했던 모든 이들에게 잊지 못할 날이었다.

학생회에서 만든 노래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고 또 불렀다. 노래를 알지 못했던 이들도 노래가 계속 반복되니 함께 되고, 노래가 주는 정서까지 실려 그날 밤은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시실리-時失里)처럼 밤이 새벽을 도와 아침을 맞고 있었다.

학교에서 별로 보이지 않았던 행지는 꼭 필요한 수업을 빼고서는 자취방과 술집을 전전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학우들과의 수다에서 항상 승일의 얘기는 빠지지 않았다. 인기라기보다 연민 같기도 했고 그의 따뜻한 정서를 부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상 처 1

귀가길, 저녁밥이 마땅치 않아 한 끼를 해결하려던 행지에게 승일이 다가왔다.

“야! 고삐리 밥 먹었냐! 나 밥 좀 사주라!”

그 날, 둘은 밥과 더불어 술까지 달렸다. 승일은 자신이 선배이니 술을 사겠다고 했다. 내심 지나가는 선배들을 잡아 덤터기를 씌우고 자신은 행지에게 가오를 잡을 요량이었다.

낮에 시작한 밥은 술을 더해 저녁까지 이어졌다. 지나간 사람만 수십 명이 됐다. 술도 꽤 먹었으나 행지는 취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름 술에 일가견이 있던 승일은 점점 자존심도 상하고 이 놈이 어디까지 먹나하는 두려움과 동시에 슬슬 술기운을 빌려 속내를 들여다 볼 요량까지 더해져 밤을 지새우게 됐다.

아침 7시, 술집을 뒤져 막걸리로 해장을 하던 승일이 말했다.

“졌다! 너 이제부터 나한테 술 먹자는 말 하지마라.”

“참내 형이 밥 먹자 했지, 술 먹자 했나요? 데려다 주세요!”

“그래 가자!”

학교에서 제법 멀리까지 나왔으니 승일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략 한 시간을 걸어야 하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낑낑대며 걷던 승일은 점점 다리가 풀리고 있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던 행지가 말했다.

“형! 앞에 여관이 있는데 자고 갈까?”

“그러자! 너는 자고 나는 가마!”

그날 둘은 같이 잤다. 사고는 다음 날 터졌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내심 자랑스러웠건만 산통은 행지가 깼다. 예술대 교정 곳곳의 수다에서 승일은 고자가 되어 있었다. 행지는 간밤의 일을 지인들에게 퍼트리고 만 것이다. 승일이 형은 고자라고 또래 여 학우들에게 재미삼아 얘기한 것이 예대 전체에 만개하고 만 것이다.

참 웃기는 행지다. 아니 그동안 사람이 슬펐던 만큼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승일에 대한 서투른 표현인 것 같기도 하다.

“승일이형은 고자래요!”

후배들은 지나가며 놀려 댔다.

‘아! 나 이 우라질 년! 보이기만 해봐라!’

승일은 몸 둘 곳을 몰라 했다. 교수님까지 소문을 들어 “야! 너 고자라며!” 낄낄대고 지나갔다.

어느 덧 행지는 승일을 좋아하고 있었다. 그날 밤, 행지는 집안사정과 살아온 얘기를 승일과 나누었다. 보이는 것과 달리 승일은 나이를 짐작키 어려울 정도로 큰 사람이었다. 증오에 귀 담지 않고 마음을 열어 심안과 내성사이를 훈훈하게 덥혀주곤 했다.

“야! 나 비싼 몸인데, 함, 안아 줄까?”

등 뒤에 행지는 울고 있었다. 술집을 옮길 때마다 눈싸움을 하며 서로를 업어주기도 하고 자빠뜨리기도 하며 둘은 밤새 신파조의 삼류 영화를 흉내 냈다. 슬픔은 정도의 차이일 뿐 누구에게나 있다는 걸 행지는 그 날 처음 알게 됐다.

아마 그 때쯤 승일은 농민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 예견했는지 모르겠다. 아비가 매학기 부쳐 주어야 할 등록금은 소를 팔아도 감당치 못했다. 우루과이 라운드니 뭐니 하며 산지 소 값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아비가 소를 팔고 돌아와 헛헛하게 웃었다고 어미는 말했다. 그 끝은 통곡이었다는 말과 함께…….

가을이면 농민의 생존을 옥조여 왔던 추곡수매가는 비료 값도 감당키 어려웠다. 아비의 사정을 뻔히 아는 승일은 장학금을 받고 있노라고 거짓을 고했다. 농대를 폐지할 예정이었던 학교의 사정을 볼 때 전액 장학금은 애초에 가당치 않은 것이었다. 장학금은 고사하고 농대가 폐지될 것이라는 소문이 학원을 흉흉하게 감싸고 있었다. 사실 수업은 들어가지 못한 채 학교에 머물고 있었다.

상처 2

행지는 승일을 사랑한 것 같다. 겨울 내내 여름 이불을 덮고 지냈던 승일을 위해 시장에서 겨울 이불을 사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언덕길을 오르기도 했다. 반찬거리를 사들고 애써 가지 않겠다는 승일을 붙잡아 자신의 방에서 따뜻한 밥을 챙기기도 했다. 학내 활동에 휘말려 단식을 하던 승일에게 당시 중부권 도시에서는 찾기 힘들었던 전복을 구해 미음을 끓여 내기도 했다.

노천단식 22일은 젊은 승일에게도 건강을 위태롭게 했다. 땅이 존재케 했으니 땅으로 돌아가 아비와 어미와 함께 하고자 했던 승일의 꿈은 애초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영민하게 전과를 할 수도 있었으나 땅을 배반치 못하겠다던 것이 그의 학내 활동의 전부였다.

고집스럽게 학교에서 버티며 마치 성전을 치르듯 승일은 학내활동을 이어갔다. 승일은 행지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자신을 통해 체화하는 것이라 했다.

그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 어느 순간 현실로 돌아오면 곧 깨질 꿈이라고 했다. 꿈이 깨질 순간의 상처보다 꿈을 꾸고 있는 순간 깨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삼류신파 같지만 행지를 꿈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삼류신파 인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것이 아니라도 아비와 어미, 땅으로 돌아가지 못할 가까운 내일을 어찌 정리해야 하는지도 승일을 옥죄여 왔다. 승일은 점점 달라져 갔다. 웃음은 잦아들고 음식과 관념을 끊은 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집회 때마다 그는 전투 조였다. 의지만 있었지 몸이 따라주지 않았던 도시아이들과 승일은 달랐다. 어려서부터 아비를 도와 농사일이며 잡일을 거들고 시장과 장터에서 어미를 도와 좌판을 거들었던 그는 일찍부터 노동으로 단련됐다. 거리에서도 단단한 모습 그대로였다.

승일은 술버릇이 생겼다. 만취하면 웃옷을 벗고 뛰는 것이었다. 학우들은 술자리가 파할 때쯤이면 그를 찾는 일이 일상이 되어 있었다. 행지는 승일을 찾아 교문을 서성거렸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 쬐던 정오경, 불덩어리 하나가 교문을 향해 뛰고 있었다.

병원 응급실에서 승일은 다른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얼굴은 퉁퉁 부어올라 있다. 살이 타들어간 몸뚱이는 쪼그라든 채 아비와 어미와 함께 실낱같은 눈물만을 흘리고 있었다. 산 사람에게 등이 휠 것 같은 짐을 남겨둔 채 말이다.

에필로그 [epilogue 혹은 뒷 담화문]

코미디 같은 5개년 계획을 내 놓고 희망을 구하라 한다. 줄 것은 뻔한 데 판정이니 사정이니 사례관리니 현학을 내 놓는다. 장애인에게 줄 것을 마련하는 것이 아닌 그들에게 줄 것을 마련키 위해 장애판정센터를 전국에 깔아 놓는 단다. 그래도 희망을 얘기하라 하니 승일만 떠오른다. 행정과 정치가 나쁜 것이 아닌 듯 하다.

장애우! 원죄를 잉태했으니 권력의 끝자락을 이제 내려놓을 때가 된 듯 하다.

[응원합시다]베이징장애인올림픽 선수단에게 기운 팍팍!

장애운동을 한다는 것은 유전적으로 무척 훌륭한 DNA가 없다면 기실 불가능한 것이다. 자본주의는 항상 화려함을 강점으로 한다. 재벌을 비난하지만 재벌에 편입되고 싶은 욕망과 일치한다. 물론 loser(루저: 패배자, 손해 보는 사람)가 재벌로 편입되는 일은 통계학적으로 잡히지 않을 만큼 불가능하다. 자본의 입장에서 천박하거나 가난한 것은 화려한 조명아래 어두운 그늘이 된다. 물론 그것을 들여다보거나 살펴보려하는 용기를 가진 이는 드물다. 주위를 살펴 볼 만큼의 여유는 자본의 입장에서 허락되지 않는다. 하루하루 링거를 꽂은 채 연명치료를 하는 모양새로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이후로 대한민국은 늘 울고 있다. 마치 타이게투스산(고대 스파르타인 들이 불구자 혹은 원치 않은 아이들을 버렸던 산의 이름)에 울려 퍼졌던 통곡처럼, 누군가는 타이게투스산에 울렸던 통곡을 대신해야 하지 않을까? 헛소리를 넘어서는 수준에서 통곡을 대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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