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이 시는 우리 국민 대부분이 알고 있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다. ‘진달래꽃’은 이별의 슬픔을 참고 극복하여,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정과 한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 싫어서 가더라도 진달래꽃을 뿌릴 테니. 그 꽃을 밟고 가더라도 나는 절대로 울지 않겠다. 그래서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는 극한의 슬픔을 극복하려는 몸부림이 아닐까 싶다.

이영선 씨. ⓒ이복남

‘진달래꽃’은 사랑하는 님과 이별하고 그에 대한 슬픔을 즈려밟도록 승화한 것 같다. 이번 달에 만난 사람은 지체장애 3급 이영선 씨다. 이영선 씨를 만나고 나서 문득 떠 오른 것이 ‘진달래꽃’이었다. 이영선 씨에게 쓰라린 배신이나 이별의 아픔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진달래꽃’이 생각나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남몰래 눈물을 삼켜야 했던 장애로 인한 아픔 때문이었다. ‘너는 안 돼!’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그는 항상 열외의 장애인이었던 다.

이영선(1966년생) 씨는 지금은 경주시가 된 경상북도 월성군 강동면 단구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위로 오빠가 둘이고 아래로도 여동생이 하나 있는 4남매의 셋째였다. 부모님은 농사를 지었다.

“그 무렵의 시골은 다 가난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 둘을 낳고 그를 낳았지만 딸이라고 해서 특별히 귀여움을 주는 시대는 아니었다. 그는 오른쪽 다리가 불편했다.

“소아마비라고 알고 있었는데 소아마비가 아니랍디다.”

그가 돌 무렵 때 어머니는 그를 업고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 당시만 해도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도 하고 방에 군불도 땠다. 부잣집에서는 땔감으로 장작을 쓰기도 했으나 가난한 집에서는 짚이나 삭정이를 땔감으로 사용했다. 삭정이란 살아 있는 나무에 붙어 있는 말라 죽은 가지다.

중학생 시절. ⓒ이복남

그날도 어머니는 그를 업고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 삭정이를 꺾으러 갔던 모양이다. 그런데 삭정이를 꺾다가 어머니는 그만 뒤로 나뒹굴었다. 어머니는 언덕배기에서 까치발로 삭정이를 꺾었을지도 모른다. 등에는 아기를 업고 있었기에 어머니가 뒤로 넘어질 때 아기는 넘어진 어머니 아래 깔렸다.

아마도 그 때 아기가 다친 것 같은데 아기가 울고 보챘지만 어머니는 병원에도 가지 않았다. 시골이라 병원도 없었을 뿐더러 멀리 도시 병원으로 갈 돈도 없었다. 그래도 다리가 그렇게 장애를 입을 정도라면 열도 나고 많이 아팠을 텐데 약을 쓴 기억도 없고 들은 바도 없다고 했다.

“며칠인가 울고 칭얼대더니 사나흘 지나니까 괜찮더랍니다.”

자박자박 걸음마를 뗄 무렵이었는데 그 사나흘이 지난 후부터 아기는 일어서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기가 일어서고 걷기 시작했으나 오른쪽 다리를 절기 시작했고 다리는 비쩍 골아서 살이 붙지 않았다.

“다리를 심하게 절뚝거렸으나 목발을 짚지는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잘못으로 아이가 그렇게 되었다고 미안해는 하였으나 특별히 내색하지 않았으므로 아버지나 오빠들도 그의 장애는 처음부터 그런 거라고 여기는 듯했다.

“마을 또래들은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으니 같이 잘 놀았습니다.”

절룩거리면서도 고무줄놀이도 하고 공기놀이도 했다. 지금은 없어진 단구국민학교를 다녔는데 친구들이 대놓고 놀리지는 않았지만 뒤에서는 놀렸다.

“자는 병신이다. 자는 절름발이다.”

꿈 많던 고교시절. ⓒ이복남

그는 친구들이 놀리는 소리를 애써 못 들은 체 했다. 그러다보니 오빠들만 따라 다녔는데 오빠들은 그를 데리고 놀지 않으려고 따돌렸다.

“학교가 십리 길은 되었는데 비가 많이 오면 못 갔습니다.”

집에서 단구초등학교 가는 길에 뽀또랑(큰 개울)이 있었는데 평소에는 징검다리로 건넜다. 비가 오면 뽀또랑에 물이 많아져서 마을 아이들이 서로서로 손을 잡고 띠를 만들어 건넜는데 홍수라도 지면 학교는 아예 못 갔다.

여느 아이들처럼 체육시간에는 교실 지킴이였을까.

“체육복을 입고 운동장엔 같이 나갔는데 달리기 같은 체육은 못했으니까 한쪽 구석에서 체육하는 친구들을 바라만 봐야 했습니다.”

학교 공부는 특별히 잘하지는 못 했지만 도덕시간은 재미있었다.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와 가치를 중시하는 바른 생활이 재미있었다니 참 특이한 아이 같다. <2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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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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