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채널e’는 EBS 방송이 매주 목요일 오후 1시 5분에 약 5분 정도 방영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역사관련 중요한 사건과 사실들을 5분 분량의 세련된 영상으로 표현하여 이를 통해 일반 시청자는 물론, 특히 청소년층이 우리의 역사에 대해 보다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제작된 것이다.

지식채널e 포맷을 벤치마킹한 이 프로그램은 숨어 있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 주기도 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힘을 기르게 일깨워준다.

2013년 1월 25일에 방영된 프로그램은 69회분으로,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는 제목으로 역사 속 장애인 이야기였다.

서양의 장애인과 조선시대의 장애인을 비교하면서 조선시대의 장애인 인식이나 사회적 지위, 복지가 더 좋다는 내용이었다.

먼저 제목부터 시비를 걸어보자.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하면서 장애인을 소재로 다루었으니 장애인도 버릴 정도는 아니라는 말이다. 이렇게 표현하고 보니 자존심이 상한다.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귀한 것이다.” 아마 이런 뜻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인이라고 해서 버릴 사람이 아니라는 주장은 사람들이 장애인은 쓸모 없는 인간, 천한 인간, 버릴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반어이다. 그러니 그것을 부정하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면서 왜 내용은 장애인을 다루었을까? 범죄자, 가난한 사람, 무식한 사람, 환자 등등 많은 사람들이 있을 텐데, 왜 하필 장애인을 다루었을까? 장애인은 버릴 대상이 아니라는 절규이다. 버릴 사람이 없다고 말해야 최하위의 장애인이 포함되어 구제되는 사회인 것 같다.

그리고 사람은 모두 고귀한 것이라는 것을 주장하려고 하였다면, 평등과 존엄성 등을 말하면 되는데, 왜 버릴 사람은 없다고 했을까? 이 제목 자체가 사람을 가치를 따지는 대상, 효능에 따라 평가하는 기준이 내포되어 있다. 사람은 버릴까를 따지는 대상 자체가 아닌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내용은 서양의 장애인 역사부터 이야기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 때에는 "장애아를 양육하지 못하도록 법을 제정하라"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였고, "장애아는 사회에서 격리시켜라"라고 플라톤이 말하였다고 한다.

이는 사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청각장애인은 신앙고백을 하지 못하므로 지옥에 간다고 말하기도 했으니, 그 유명한 철학자들이 인간에 대한 이해는 너무나 부족했던 것이다.

아니, 장애인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상론과 국가론 등에서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당한 음악도 필요하고 정치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강한 남자가 있어야 강한 군대를 가질 수 있으므로 칼을 잡을 수 없는 장애인은 살해나 유기의 대상이었다.

강한 국가의 이상을 위해서라는 그리스·로마시대의 유기와 경제발전이 배분과 복지보다 우선이며, 여력이 생기면 복지를 한다는 경제발전과 시장경제, 자본주의 사회, 특히 복지 후진국들의 변명을 하는 현재 한국의 실정과는 장애인 방임과 정도의 차이일뿐 철학적 차이는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이 방송 프로그램은 다음으로 중세유렵의 장애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장애인은 신에게 벌을 받은 사람", 장애인에게 고문과 사형집행 등 서양에서 자행되었던 장애인의 잔혹한 역사 등을 이야기한다. 이 것이 방송에 나오는 서양 장애인 역사 전부다.

고대에도 시인 호머, 에언가 티레시아스, 피네유스 등 장애인이 있었으며, 중세에서는 교회 아래 장애인 시설들이 있었는데, 369년에 설립된 Caesarea-in-Cappadocia가 있었고, 1254년 루이 9세는 십자군 전쟁의 실명용사들을 위한 큉즈뱅트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장애인 인물로는 꿀벌학자 후버, 영국 캠브리지 대학 수학교수 니콜라스 사운더슨, 건축가 존 매트칼프, 스콜틀랜드 시인 토마스 블렉룩, 오스트리아 성악가이자 피아니스트 마리아 데레사, 음악가 베토벤, 시인 바이런, 헤르만 헤세(언어장애) 등 무수히 많다.

그러나 이런 인물 하나 소개 없이 프로그램은 중세에 장애인을 고문하고 죽인 이야기만 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장애인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를 질문하면서 조선시대로 이야기는 넘어간다.

독질인(매우 위독한 병에 걸린 사람), 잔질인(몸에 질병이 남아있는 사람), 폐질인(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린 사람)이란 용어를 사용하였고, 장애를 질병 중의 하나로 인식하였다고 소개한다.

서양은 장애인을 죽이는 사회이고, 조선은 신의 저주나 버림으로 보지 않고 의학적이고 과학적으로 인식했다는 말로 들린다.

조선시대라고 장애인을 미신과 결부시키거나, 벌은 받은 것으로 보고 피하고 괴롭히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면 왜 현대와서 이렇게 문화적이고 위대한 정신을 잃고 야만인들이 되었을까? 장애인 비하 속담은 왜 있고, 전생에 죄를 운운할까?

세련되지 못하게 자막 방송을 하고 있는 역사채널e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방송 화면. ⓒ서인환

방송 멘트를 그대로 인용해 보자.

조선시대 왕들은 장애인의 복지를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시행했는데, 세종 14년(1432년 8월 29일) 세종실록에 의하면, "독질이 있는 사람은 부역을 면제해 주었고, 장애인을 정성껏 보살핀 가족에게는 표창제도를 실시했으며, 반면 장애인을 학대하는 자에게는 가중처벌을 내리는 엄벌제도를 시행했다.

장애인이 무고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면 해당 고을의 읍호를 한 단계 강등하는 등 장애인을 천시했던 서양과 달리 선진적인 복지 정책을 펼쳤던 조선이었다.

특히, 세종 16년 11월 24일 세종실록에 의하면, 장애인의 자립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점복사, 독경사, 악공 등 장애인을 위한 전문직 일자리를 창출하였으며, 신하가 "관현(관악기와 현악기)을 다루는 시각장애인 중에 천인인 자는 재주를 시험하여 잡직에 서용하게 하소서"하니, 왕이 그대로 따랐다. 장애인은 신분에 상관없이 능력 위주로 채용하였던 것이다.

또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명통시를 설립,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단체 명통시에 소속된 장애인들은 기우제 등 국가의 공식 행사를 담당, 그 대가로 노비와 쌀을 받았다.

장애인에 대해 편견과 차별 없는 사회였던 조선시대, 그 결과 조선 초,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낸 척수장애인 허조, 중종 때 우의정을 지낸 간질장애인 권균, 광해군 때 좌의정을 지낸 지체장애인 심희수, 영조 때 대제학, 형조판서에 오른 청각장애인 이덕수 등 인물이 있었으며, 조선시대는 장애인은 단지 몸이 불편한 사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조선시대 장애인 인물을 처음 소개한 것은 1886년 맹인직업사연구(임안수) 논문이었으며, 정창교의 “역사 속 장애인은 어떻게 살았을까?”, 한국장애인예술인협회의 “한국장애인사” 등 책자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조선시대의 장애인 인물도 사실이고, 제도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조선시대를 편견이 없는 사회라고 표현한 것은 잘못이다. 지금 장차법이 있으니 차별은 없다고 말할 수 없듯이 말이다.

종교기관인 명통시를 장애인단체 활동으로 보는 것도 무리가 있고, 재능이 우수한 몇 사람 관직에 오르고 궁중의 관현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하여 신분에 관계 없는 능력 사회로 장애인에게도 평등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런 식이라면 현재의 복잡한 제도를 먼 후세에는 장애인 천국이라고 말할 것이다.

장애인을 위해 지금의 장애인 특채 국가공무원 제도와 같은 제도가 이미 조선시대에 있었다는 정도로도 충분히 새로운 역사로 인식할 수 있는데 말이다.

장애학대를 방지하고, 천시되지 않도록 제도를 폈다는 이야기는 그러한 강력한 제도가 아니면 장애인이 살 수 없었음을 반증한다.

세종이 지화라는 판수(점복)에게 벼슬을 내리려 하자, 모든 신료들이 국가에 공이 있으면 돈을 주면 되는데, 왜 벼슬을 내리느냐고 반대를 하였고, 정치적 칼바람이 일 때마다 장애인을 재물로 몰아 죽였으며, 피폐한 걸인 생활로 굶어 죽는 이가 많았다.

물론 세종대왕은 자신이 장애인으로, 장애인의 복지에 지대한 공을 세운 분이다.

서양은 인물 하나 예를 들지 않고 한국의 역사에서는 장애 유형별로 예를 들면서 비교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에서는 너무나 미화된 조선의 장애인 역사를 쓰고 있다.

청소년을 위한 역사교육이 이렇게 왜곡되면 곤란하다. 특히 역사적 자료를 제공한 곳이 국사편찬위원회라니 놀랍다. 역시 장애인의 역사는 새로운 시각이 아니라 세종이 장애인이었다는 사실을 흥밋거리로 하고, 겉핥기로 장애인을 바라보고 있는 프로그램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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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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