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하루가 간다.

지나간 기억 속에 남아

소리 없이 그리움이 침묵할 때

허공에 그려지는 당신의 모습이.

보고 싶다 못해

눈물 꽃이 되어 나를 울린다.

내 마음의 눈물 꽃이

마르고 또 마르고

아름답게 피어나

그대 가슴속에서 눈물 꽃이 되리라.

(눈물 꽃, 박정현 작. 2006년 4. 20. 장애인의 날 장려상)

박정현씨 ⓒ이복남

행복의 척도는 욕구분의 소유이다. 누구나 어떤 욕구를 가질 때 그 욕구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노력을 해도 그 욕구가 충족되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고통을 느끼고 자신은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욕구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아무리 어렵고 힘이 들더라도 불행하지만은 않다. 왜? 아직은 꿈이 있으니까. 숱한 세월 가슴을 치며 통한의 눈물을 뿌리면서도 아름다운 눈물 꽃을 피우기 위해 오늘은 참고 기다리는 사람.

박정현(44)씨는 부산에서 나고 자란 부산토박이다. 부산진구 범천동 중앙시장 부근에서 아버지 박중기(작고) 어머니 김연희(70)씨 사이에서 2남 1녀의 둘째로 태어났다. 당시 집 부근은 시외버스터미널과 조선방직이 있는 번화가였다. 예전에 할아버지는 제법 부자였다는데 아버지가 뭔가 사업을 하다가 다 망했다며 그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닭장사를 하셨다.

문현동에 있는 성동국민학교를 다녔는데 공부는 뒷전인 채 놀기 좋아하는 개구쟁이였다. 초읍에서 부터 서면을 거쳐 부산항 7부두로 흘러드는 동천이 언제부터 썩은 똥천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어린 시절 동천 옆에는 통나무들이 쌓여있었다. 장마철이 되어 동천이 불어날 때쯤이면 여름방학이 되고, 통나무를 굴려 동천에 띄워 타고서 7부두까지 오르내렸다.

독립기념관에서 ⓒ이복남

시외버스터미널, 동천, 황령산, 멀리 광안리까지 종횡무진으로 내달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방을 매고 학교에는 갔으나 4교시가 마치기가 바쁘게 몇 놈이 어울려 담을 넘었다. 봄이면 황령산에서 참꽃도 따먹고 삐삐도 뽑아먹고, 여름이면 동천에서 통나무배를 타고 전쟁놀이도 하다가 광안리까지 달려가기도 했다. 겨울에는 시외버스터미널 주변을 어슬렁거렸고, 지금은 사라진 중앙시장 옥상마을도 좋은 놀이터였다.

가끔 엄마를 졸라 통닭 몇 마리를 얻어 친구들과 나눠 먹었는데 그 덕분인지 어쨌는지 그는 언제나 대장이었다. 5학년 때 범천동에 있는 성서국민학교로 옮겼으나 개구쟁이 짓은 여전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다시는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학교도 다니기가 싫었고 공부가 정말 하기 싫었던 것이다.

컴돌이봉사단발대식 ⓒ이복남

아버지는 애원을 했다. “정현아 제발 중학교만 나와라.” 까짓 것 아버지의 소원인데 중학교는 한번 다녀 볼까. 금성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중학생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배 몇이 그를 찾아 왔다. “덩빨도 있고 하니 태권도부에 들어 온나” 그래서 태권도부에 들어갔는데 태권도를 배워보니 제법 재미가 있었다. 덕분에 학교 다니는 것도 그런대로 견딜 만 했고 태권도는 3단을 땄다.

그리고 송도상고로 진학을 했다. 그런데 또 태권도부에 들어오라는 것이 아닌가. 마지못해 태권도부에 들기는 했으나 이미 3단을 딴 상태라 신출내기들하고 태권도를 배우는 게 영 재미가 없었다. 다시 4교시만 끝나면 줄행랑을 쳤다. 송도 바닷가에서 헤엄도 치고 다이빙도 하다가 바다에서 놀기가 시들해지면 근처 당구장에서 놀았다. 덕분에 당구는 500을 쳤다.

당시 집에는 1.4톤, 2.5톤 등 트럭이 2~3대 있었는데 겨울 방학이 되자 닭을 실러 가는 닭장차 트럭에 따라 붙었다. 가까이는 김해 양산 울산을 비롯해서 멀리 전라도와 경기도까지 닭을 사러 다녔다. 양계장에서는 1막사에 500마리 내지 1000마리 정도의 닭을 키우는데 흥정을 할 때는 1막사를 통째로 샀다. 닭은 38일~42일 키운 닭으로 무게가 1.2kg가 적당한데 요즘은 속성으로 키워 20일~23일 밖에 안 걸린단다.

야학에서 컴수리봉사 ⓒ이복남

2.5톤 트럭에 5단으로 닭장을 쌓으면 1천마리 정도는 실을 수 있고 1천마리를 실은 트럭을 구포에 있는 도계장으로 몰고 가서 차례가 되기를 기다렸다. 도계장은 보통 새벽 1시쯤부터 작업을 하기 시작하는데 하루에 20여대의 트럭이 들어온다. 트럭 1대에 1천 마리씩 20대니까 보통 하루에 2만 마리 정도를 처리하는데 대여섯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산닭 1천 마리를 도계장에 넣으면 한 시간도 안 되어서 먹을 수 있는 생닭으로 처리가 되어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처리 된 닭을 가게로 가져와서 생닭으로도 팔고, 통닭으로 튀겨서도 팔았다. 시외버스터미널이 있을 무렵에는 그 주변 앞뒤로 늘어선 닭집이 족히 70~80곳은 되었을 거란다. 그럼에도 설이나 추석이 되면 완전 대목으로 5~6일전부터 온 식구가 밤을 새워야 했다는 것이다.

박정현씨 이야기는 2편에 계속.

* 이 내용은 문화저널21(www.mhj21.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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