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피스의 설립자이자 현재 대표를 맡고 있는 브리지트 초드리(Brigitte Chaudhry)씨. ⓒ에이블뉴스

'로드 피스'(Road Peace)는 말 그대로 도로 위의 평화를 추구하는 영국 시민단체다. 로드 피스 관계자로부터 받은 명함에 새겨져 있듯이 로드 피스는 교통사고 피해자를 지원하고(supporting crash victims), 도로 위험을 줄이는(reducing road danger)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이 단체의 로고를 살펴봤더니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의 가슴과 배에 도로가 그려져 있었다.

한국교통장애인협회, 한국장애인문화협회, 한국산재노동자협회가 한국장애인재단의 지원을 받아 구성한 '영국 중도장애인 복지시스템 체험 및 국제교류사업팀'은 10일 오전 영국방문 첫 행선지로 런던시 콜드하버레인 세익스피어 비즈니스센터에 위치한 로드 피스 사무실을 방문했다. 로드 피스로 가는 길은 비가 오는데다가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자가용을 끌고 나온 이들이 많아 정체가 심각했다. 그리 평화롭다고 할 수는 없었다.

"1990년 10월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난 뒤 협회를 설립했다. 당시 영국의 교통사고에 대한 정보를 전혀 알지 못했다. 정부측에서도 이를 알리지 않았다. 사고를 당했을 당시 어떻게 해야할지 전혀 몰랐다. 영국 운전면허 취소 벌점은 12점이 만점인데, 가해자는 단지 8점만 감소하는 판결을 받았다. 내 아들이 죽었는데도 말이다. 판결 당시 아들의 죽음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이후 교통사고 피해자들의 부모 모임에 참석하게 됐고, 좀더 체계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 1992년 협회를 설립했다."

사무국장 에이미 애런 토마스(Amy Aeron-Thomas)씨와 함께 한국측 방문단을 맞은 로드 피스의 대표이자 창립자인 브리지트 초드리(Brigitte Chaudhry)씨는 로드 피스의 설립 계기를 담담히 설명했다.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의 분노로 시작된 로드 피스의 활동이 올해로 17년째를 맞고 있는 것이다.

첫 질문은 로드 피스쪽에서 먼저 나왔다. 브리짓 초드리씨는 한국에서 찾아온 방문객이 왜 자신들의 단체를 찾게 된 것인지 궁금증을 숨기지 못했다. 한국교통장애인협회 신벽향 실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로드 피스의 활동 소식을 알고 있었고, 비슷한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로서 배울 점을 찾기 위해 영국까지 찾아오게 됐다"고 답변했다.

서로 소개를 마친 후, 본격적인 미팅이 시작되자 한국방문단은 미리 준비해온 10여개의 질문을 한꺼번에 던졌다. 궁금한 부분을 모두 듣고, 정리해서 한꺼번에 답변하겠다는 로드 피스측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모든 질문을 듣고 난 후, 브리짓 초드리씨는 협회를 설립하게 된 계기를 처음으로 설명하고 나서, 협회를 운영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인지 꺼내놓았다.

"사무실을 차리기 전에 집에서 7년정도 협회를 운영했다. 우리와 같은 단체를 운영하는 것이 얼마나 큰 어려움이 뒤따르는지 모두 잘 알 것이라고 믿는다. 협회의 주 목적은 교통사고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지만 운영자금을 모금하는 일에 시간을 많이 뺏기게 된다. 그렇게 하다보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지원에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된다."

과연 이 단체는 어떠한 자금으로 운영되는 것일까? 정부 지원은 받고 있는 것일까? 우리측 관계자들의 궁금증이 폭발했다. "정부 지원은 지금까지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후원을 받거나 회원들의 도움을 받아서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 단체는 자금 마련쪽으로는 똑똑하지 못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시간을 더 투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 회원은 얼마나 되고, 회원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일까? "회원은 1천명이 조금 안 된다. 회원들 중 다섯 그룹이 지방에서 일하고 있다. 그중 몇명은 경찰과 연관이 있다. 지부들은 뉴스레터 등을 배포하고,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일을 하고 있다."

로드 피스가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캠페인이다. 정부와 언론, 대중들에게 부드럽게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차사고로 사망했을 당시 교통사고의 위험성을 알리는 편지를 당국에 보내는 활동을 벌였고, 최근 제임스 딘의 사망 50주년을 맞아 '스피드 카메라가 있었더라면 제임스 딘은 죽지 않았을 것 '이라고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이들이 현재 벌이고 있는 캠페인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과속방지턱을 설치하는 캠페인, 시내에서 저속 운전을 하자는 캠페인, 스피드 카메라를 설치하자는 캠페인, 운전중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말자는 캠페인, 음주운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캠페인 등 주로 교통안전을 위한 것들이고 차량에 블랙박스를 설치해 정확한 사고원인을 규명하자는 것도 있다.

이러한 캠페인들이 과연 얼마나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일까? "2001년부터 영국에 스피드 카메라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부터는 운전 중 휴대전화를 쓰는 것이 불법이 됐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7~8년 전보다 교통사고가 많이 줄어들었다. 40%를 줄이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는데, 지금 거의 근접한 수준이다."

영국와 한국의 가장 큰 차이점은 교통사고 피해자에 대한 지원체계에 있었다. 한국측 방문단의 귀를 사로잡은 대답은 영국의 경우, 의료지원이 무조건 무료이기 때문에 교통사고 이후 모든 치료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 것과 교통사고로 직업을 잃어 생계에 문제가 생긴다면 관할 시측에서 모두 생활비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측이 기초복지 체계가 얼마나 취약한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대답이었다.

민간보험에 따른 보상금 문제는 영국도 꽤나 복잡하고 더디게 처리되는 듯 했다. "보통 4년이 소요되는데, 보험회사끼리 서로 공방하는 형국이다. 보험회사는 '사고를 자기 잘못으로 받아들이지 말라, 가족들과 절대 만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영국에서 보상금을 받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고 보면 된다. 받더라도 서로간 책임 분담이 크다. 그래서 일단 사고가 나면 운전하는 사람의 과실이 크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이날 만남을 끝내기전, 한국측 방문단은 로드 피스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단체들과 교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주력했다. 이른바 '국제교통장애인협회'가 있다면 바로 가입해서 활동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하지만 '국제교통장애인협회'라는 조직 자체가 없다는 사실을 곧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현재 교통사고피해자들의 유럽연합(European Federation of Road Traffic Victims)이 존재하고 있고, 로드 피스의 대표 브리지트 초드리씨가 지난 2004년부터 이 유럽연합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측의 유럽연합측 활동에 참여하고 싶다는 강한 의사를 전달했고, 지역적 한계 때문에 같이 활동하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겠느냐는 브리지트 초드리씨의 걱정을 무색하게 하듯 "언제 어디서 모이든 불러만 주면 달려가겠다"고 국제교류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날 만남은 한차례도 쉬지 않고 2시간이 넘도록 계속됐다. 분명 한국측 방문단에겐 뜻깊은 시간이었지만, 영국측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긴 듯 했다. 로드 피스측은 교통사고 피해자들에 대한 한국측 지원체계가 오히려 더 잘 되어 있다는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면서 다양한 질문을 하기도 했다. "교통사고는 실수가 아니라 범죄"라는 한국측 방문단의 강한 어조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의 뜻을 표했다. 양측은 서로 국내에서 벌이고 있는 다양한 캠페인 활동을 담은 리플렛과 자료를 교환하기도 했다.

기념촬영까지 마치고 로드 피스를 떠날 때 런던의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다. 하지만 지하철 파업으로 인해 오후 교통체증은 더욱 심각해졌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예정했던 대영박물관 장애인 편의시설 체험까지는 소화할 수 있었지만 그 다음 예정지였던 트라팔가광장은 결국 교통체증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로드 피스 관계자들과 미팅을 갖고 있는 한국교통장애인협회, 한국장애인문화협회, 한국산재노동자협회 관계자들. ⓒ에이블뉴스

한국교통장애인협회 신벽향 실장이 10일 로드 피스 사무국장 에이미 애런 토마스(Amy Aeron-Thomas)씨에게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로드 피스에서 발간하고 있는 교통 안전을 위한 캠페인 자료들. ⓒ에이블뉴스

로드 피스의 사무실 전경. 사무실 곳곳에서 로드 피스의 로고를 발견할 수 있다. ⓒ에이블뉴스

로드 피스 관계자들과 한국측 방문단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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