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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정덕환이 솔로앨범을 낸 이유
‘흔들리며 피는 꽃’ 감동 스토리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8-01-05 11:19:011
호수공원에서 촬영한 앨범 재킷 사진. ⓒ서인환
▲호수공원에서 촬영한 앨범 재킷 사진. ⓒ서인환
장애인 직업재활의 대가인 정덕환 행복한 공장만들기 운동본부 회장이 솔로앨범을 냈다. 이 노래는 도종환의 시를 작곡가 이민욱 감독이 작곡한 것으로, ‘흔들리며 피는 꽃’이란 노래다. 자서전이나 신앙서적을 출판한 적은 있어도 앨범을 낸 것은 처음이라 별 것 다 한다고 놀라는 사람도 있고, 대단하다고 감탄하는 사람도 있다.

정덕환 회장은 46년생이다. 큰형이 유도선수라 그의 영향을 받아 중학교 시절 유도선수에 입문하여 고3 시절 최연소로 국가대표 선수가 되었고, 승률 80%가 넘는 유망주였다. 어느 운동 선수와 마찬가지로 올림픽 금메달이 목표였을 것이다.

1966년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여 군복무를 마치고 유도로 승승장구하던 정덕환(당시 전매공사 실업팀에 예약되어 있었음)은 우승의 기쁨을 가족에게 전화를 한다는 것이 너무 흥분해서인지 전화번호 끝자리를 잘못 눌러 우연히 통화된 사람과 인연을 맺어 아내로 맞이하였다.

매 경기마다 아내의 응원을 받으며 행복했던 어느 날 연습 중에 경추 4, 5번을 다쳐 척수장애인이 되었고, 8개월 동안은 일어나지도 못했다. 아내는 양재기술을 배워 삯바느질을 하며 생활을 유지하면서 정 회장은 집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세월을 보내며 재활훈련만 하던 중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이 37세가 되어 구로동에 세 평짜리 구멍가게인 이화식품을 차렸다.

가만히 앉아 찾아오는 손님에게 계산만 하면 되어 처음에는 행복하게 여겼지만, 다른 장애인들과 직업을 나누고 싶었고 구로단지의 특성상 다른 장애인들과 함께 일터를 마련하고 싶어 지하실을 얻어 전자부품을 생산하게 되었다. 정 회장은 세발 오토바이로 여러 회사를 돌며 납품을 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냉대와 차별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러한 냉대와 멸시는 처음 경험하는 것은 아니었다. 장애인이 된 후 그래도 자신이 가진 기술이 유도라 모교인 연세대에 찾아가 코치 역할을 자원봉사하려 하였지만, 아무도 코치를 받지 않고 기피하는 것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장애인이지만 기회를 달라고 소리쳤지만 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현실은 암담하였다. 아내의 독실한 신앙심과 기도에 힘입어 그래도 감사하며 용기를 잃지 않은 정 회장이지만 시련의 연속이었다.

공장 주인의 부도로 맨몸으로 쫓겨나기도 하고, 상당한 수익을 올렸다고 생각했지만 늘 적자였다. 한경직 목사의 도움으로 에덴이 법인화가 되고 이제는 종량제 봉투, 판촉물 제작, 인쇄, 화장품 등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40년간 바쳐 일한 결과이다.

지금은 여러 사람들에게 시샘을 받기도 한다. 사무실에 걸린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보고 정치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냐, 장애인직업재활협회 회장을 하면서 상당히 이권을 챙긴 것이 아니냐, 토지와 현금을 상당히 가져 어느 정도 살만한 부르조아 장애인이 된 것 아니냐...

정치에 꿈을 둔 사람 아니냐, 장애인 직업재활을 핑계로 결국 자신이 부자가 된 것 아니냐, 매형이 에덴복지재단 이사장을 맡고 아들도 중책을 맡고 있으니 족벌이 아냐니 등등... 그러나 그의 삶은 나눔과 성김, 장애인 당사자주의를 옹호하는 순수한 사람이다.

이러한 말을 듣고 정 회장은 서운한 마음을 조심스럽게 드러낸다. 법인 설립자 2세가 아무런 노력도 없이 세습을 받은 것도 아니고, 겨우 팔을 조금 휘저을 수 있는 정도의 신체적 장애인으로서 가족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대소변을 보는 데에도 가족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런 고생을 같이 한 가족과 함께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지 족벌의 이득을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현 김학수 에덴복지재단 이사장은 유엔 에스캅 사무총장을 역임한 사람으로 장애인복지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법인이 성장한 것이지 개인적으로 축제한 것이 전혀 없다. 통장을 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정 회장에게 부자라고 뒷담화를 하니 억울하다고 말한다. 정 회장은 끝없이 노력하고 있는 중이지 사회적 재원을 개인 것이라 생각해 본 적도 없단다.

오히려 정부의 장애인 관련 공무원과 후배 장애인 지도자들에게 꾸짖듯이 힘주어 말한다. 시설에 있지 않고 자립하여 직업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통하여 기회만 있다면 장애인도 해 낼 수 있다는 증명을 해 보인 것이니, 탈시설의 해답을 여기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제대로 된 급여를 주고 자립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규모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 발달장애인의 최저임금도 되지 않는 수준의 급여를 주며 복지라고 할 것이 아니라 장애인도 행복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음을 해 보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지금은 행복한 공장만들기 운동으로 호소하고 있다.

‘행복한 공장만들기’는 현재의 에덴복지재단의 공장의 직원들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말이냐고 물었더니 전국 곳곳에 경쟁력 있는 제대로 된 공장을 많이 만들도록 지원하여 장애인에게 행복을 주자는 운동이란다. 지금까지의 성공 노하우를 널리 퍼뜨리고 싶은 것이다.

정 회장은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소유자라는 것을 그의 슬로건에서 찾을 수 있다. 광고전문가 같다. 에덴(EDEN)은 Employment(고용)+Divineness(신성함)+Enterprise(기업)+Network(네트워크)라고 하고, 1030(일이 없으면 삶이 없다) 운동도 전개하고 있다.

현재의 170명의 직원 중 50쌍 이상이 결혼을 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이제 전국으로 기업들을 만들어 나가 더 많은 장애인 기업의 경쟁력과 행복찾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기업을 정 회장이 직접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나누어 주고 싶은 것이다.

직업재활시설협회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특권을 성장에 이용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고 싶어 다수고용 사업장 지원 공모도 포기한 정 회장은 이제 노년기가 되어 성공이나 극복이나 재활보다는 기회와 행복을 강조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느냐,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느냐’는 말은 장애에 대해 냉대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장애는 하나의 꽃이 되기 위한 바람 같은 장점일 뿐이다. 평창에서 성공기원 콘서트에서나 직장에서 부른 찬송가를 보면 ‘지금 내가 여기 서 있는 것이 주님의 은혜라’라고 노래 부른다.

정 회장은 척수장애 1급이지만 직업적 중증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기회는 비차별이고 복지이다. 할 수 있는 기회를 차별이 주지 않고 있고, 수준 높은 직업생활을 해 보지도 않고 평생훈련이나 하는 시설로 전락한 것에 일침을 가한다.

‘흔들리며 피는 꽃’은 연극치료를 하고 있는 이민욱 한국기독교 문화예술 총연합회 예술총감독이 장애인 연극치료를 보고 감동하여 도종환의 시를 연상했고, 작곡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 회장을 만나 이 사람이 부를 노래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 노래는 척수장애인의 호흡량의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1년간 연습을 하였는데, 허스키하면서도 저음인 음색에 특별한 기교도 없이 정성스럽게 부른 노래로, 매우 담백하여 마치 샐러드에 파프리카처럼 맛을 돋운다.

그리고 시가 내포한 내용도 음미할 수 있으면서 곡도 매우 훌륭하고 호소력이 있어 듣고만 있어도 잔잔한 파장이 가슴에 인다.

이 노래는 CD로 제작되었으며, 유튜브에서도 들을 수 있다.정 회장은 이 노래를 통하여 장애인식 개선을 하고, 잘못된 제도에 대해 불로 만나 싸우지 않고 물로 만나 소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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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서인환(rtech@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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