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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타는 아버지 모시는 연인의 사랑
"사랑하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8-01-09 17:27:061
기차를 타고 가는 가연.  ⓒ 최선영
▲기차를 타고 가는 가연. ⓒ 최선영
덜컹거리는 부산행 기차는 따뜻한 온기로 가득합니다.

창밖의 차가운 바람은 따스한 이곳을 비집고 들어오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온기를 빼앗길까 봐 조금의 빈틈도 내어주지 않고 차가운 기운을 단단히 막고 있습니다.

그가 머무는 그곳을 향해 달려가는 기차는 어쩌면 만나지도 못할 막연한 기대만을 담고 무작정 달리고 또 달립니다.

“전화라도 하고 갈걸 그랬나...
전화하면 오라고 했을까?...
그래 가서 전화하자 만나게 되면 만나는 거고 아니면... 그냥..."
가연은 혼자 정리되지 않은 어질러진 마음을 몇 마디 중얼거리다 닫아버립니다.

느리게 천천히 그를 향해 달리는 그 시간에, 덜컹이는 기차소리가 가연의 마음을 두드리고 심장소리는 자꾸만 커집니다.

지금 가연은 제훈을 만나러 갑니다. 처음 그를 만난 그 계절, 그 시간, 그 기차를 타고 갑니다.

그를 처음 만난 그날도 창밖은 흰 눈 개비가 날리는 차가운 날씨였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2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대학 등록금을 마련한 가연은 대학생이 될 시간을 기다리며 모처럼 만에 여유를 부리며 친구들과 여행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가연아 정말 축하해 넌 해낼 줄 알았어”
“우리 가연이 정말 멋져!! 2년 동안 직장생활하면서 공부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정말 대단해”

친구들은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 대신 사회라는 낯선 환경에 뛰어들어 대학 등록금을 준비하며 집안에서 가장 노릇까지 한 가연을 칭찬합니다.

2년...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가고 싶은 대학에 대한 꿈을 잠시 접어두고 노동 현장에서 일을 하다 다쳐 장애를 입은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의 가장 노릇까지 하며 밤마다 책상 앞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가연이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사업을 하다 실패하고 술로 세월을 보내는 아빠를 지켜보다 몸과 마음에 병을 얻은 엄마는 침대에 누워지내다 결국 병이 깊어져 아직은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가연이를 아빠 손에 맡기고 가연이의 곁을 떠났습니다.

엄마가 떠나고 난 후에야 아빠는 후회하며 엄마 노릇까지 잘 하겠다며 제자리를 찾으셨습니다.

한 번도 힘든 일 을 해보지 않았던 아빠가 노동 현장의 일을 하며 가연의 뒷바라지를 하다 사고를 당했습니다.

몸이 고단하고 힘들 때면 그냥 포기해버리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장애를 입게 된 아빠를 생각할 때마다 가연은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며 다시 책을 펼쳐들곤 했습니다.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고 2년 동안 밤잠을 줄여가며 공부한 덕분에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가연이가 가장 노릇을 하며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 동안 아빠도 장애라는 낯선 환경에 좌절하지 않고 장애인을 고용하는 회사마다 문을 두드리고 재취업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결과 회사 경영을 하던 경험을 살려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얻게 되었습니다.

가볍고 행복한 마음을 안고, 가연은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몸을 실었던 기차에서 제훈을 만났습니다.

스치는 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 스며들면, 그 사람의 공간으로 들어가고, 나는 그 사람의 시간이 되고 그 사람은 나의 현실이 되면서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인연을 만들게 됩니다. 그 인연은 평범한 일상도 특별하게 변화시켜버립니다.

가연과 제훈도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수많은 사람 중에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눈길이 머물고 흔들리는 눈동자를 통해 서로를 마음에 담아버리는 순간부터 그들의 특별한 인연은 시작되었습니다.

가연과 나누는 친구들의 대화는 건너편 옆자리에 앉은 제훈의 귀에 자연스레 전해졌습니다.

무심코 가연을 쳐다본 그 한 번의 시선이 가연의 시선과 부딪히는 순간 제훈은 첫눈에 반한다는 믿지 못할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가연을 바라보는 제훈. ⓒ 최선영
▲가연을 바라보는 제훈. ⓒ 최선영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 내가 저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조차도 내게는 사치야.”

제훈은 가연의 시선을 먼저 피하며 자꾸만 뜨거워지는 마음을 창밖으로 던져버립니다.

시선을 피하고 마음은 던져버렸다고 생각했지만 가연의 존재는 제훈의 심장을 자꾸만 설레게 합니다.

부산역에 도착하자 서둘러 몸을 일으켜 내려버립니다.
설렘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움켜쥐며

“힘든 내 인생에 끌어들이지도 말고, 사치를 부리지도 말자.”
제훈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가연에게서 멀어집니다.

그들의 인연은 운명이었을까요...
제훈이 떨어뜨리고 간 작은 메모장을 가연이 집어 들었습니다.
제훈의 뒤를 따라나왔지만 서둘러 사라진 그의 흔적을 쫓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훈이 메모장을 찾으러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역을 빠져나왔지만 제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 중요한 게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메모장을 살짝 열어보았습니다.
빼곡히 적혀 있는 작은 글씨들...

“남자가 참 꼼꼼한가 봐 그냥 메모장이 아닌 거같아 뭔가 많이 담겨 있어.”
“뭐가 그리 급하다고 그렇게 불러도 듣지도 못하고 가버리는지...”
지현이는 가연이 들고 있는 제훈의 메모장을 힐긋거리며 말합니다.

“찾으러 올 것 같지도 않고 그만 가자.”
가연의 팔을 끌어당기며 수인이 말합니다.

가연은 메모장을 가방에 넣고는 바다를 향해 달려갑니다.
유람선을 타고 갈매기 밥을 주며 동심으로 돌아가 보기도 하고 국제시장에서 싱싱한 산낙지를 오물거리며 셋이서 하게 된 첫 여행의 시간 속에 빠져듭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부산의 비릿함 냄새는 기분 좋은 추억으로 가연의 마음에 들어옵니다.

즐거운 시간을 뒤로하고 그들은 서둘러 역으로 돌아옵니다.
이제 일상이 기다리는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친구들은 아직 기차가 출발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눈을 감고 잠을 청하고 있습니다.

늘 다이어리를 들고 긁적이는 가연은 친구들과 함께 한 시간이 희미해지기 전에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가방을 열고 다이어리를 꺼내려다 주인을 잃어버린 체 우두커니 놓여있는 제훈의 메모장을 봅니다.

“아... 맞아 메모장”
가연은 메모장을 꺼내 한 장 한 장 넘겨봅니다.

조금은 어둡고 무거운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빼곡히 적혀있는 많은 내용들... 다른 사람의 삶을 훔쳐보는 것 같아 자세히 읽지는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전화번호 같은 게 있을까...라는 생각에 뒤적이다
가연의 눈을 동그랗게 만든 이름을 보고 놀랍니다.
잃어버리기 전까지 그는 메모를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가연의 이름을 반복해서 적어놓았습니다.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 나온 가연의 이름을 받아 적었나 봅니다
가연, 사치...글귀 하나하나가 가연의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저 그거...”
가연 앞에 멈춰 선 걸음은 메모장을 보고 있는 가연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가연 앞에 서 있는 제훈. ⓒ 최선영
▲가연 앞에 서 있는 제훈. ⓒ 최선영
고개를 들고 올려다 본 가연은 놀라서 그만 메모장을 무릎에 떨어뜨립니다.

제훈은 군대를 다녀와 대학 3학년에 복학해야 했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 지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과외가 없는 날 시간을 내어, 1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입원 중이신 아버지를 뵙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대학을 합격하고 힘든 형편 때문에 한 학기 마치고 군대 간 남동생과 늦둥이 쌍둥이 여동생들...

그동안 아버지 병원비와 생활비는 아버지가 저축해둔 것으로 채웠지만 이제부터는 제훈의 몫이 되어버렸습니다.

제훈에게는 여자친구도 있었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제훈의 옆에 오래 머물지는 않았습니다.

서로 깊은 마음을 나누던 것도 아니었기에 제훈도 당연하다는 듯이 그녀의 선택에 미소를 보내며 미련 없이 보냈습니다.

그런 제훈 앞에 나타난 가연은 제훈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설렘을 안겨주었고, 그 설렘의 감정을 시작도 해보기 전에 밀어내야 하는 자신의 상황이 몹시도 싫었습니다.

친구들과 나누는 가연의 이야기는 제훈의 마음 한편을 아프게 했고 대견해 보였습니다. 아마 그래서 더 가연이 예뻐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냈을 텐데 친구들과 여행을 온 가연은 어두운 기색 없는 밝은 모습이었습니다.

인연처럼 다시 서울로 가는 길에 가연과 다시 마주한 제훈은 비켜갈 수 없는 인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친구라도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친구가 되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친구라는 선을 그어놓았지만 그들은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졸업을 앞둔 가연은 제훈에게 힘들고 어려운 그 길, 함께 걷고 싶다고 했습니다

가연을 향한 깊어진 마음만큼이나 제훈은 힘든 짐을 가연에게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모진 말과 냉정한 뒤 모습을 보이며 가연을 친구라는 그 자리조차도 앉지 못하게 밀어내고 제훈은 새로운 일을 하겠다며 부산으로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가연은 졸업을 했고 직장을 다녔습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시간을 보내며 매일매일 생각했습니다.

“내가 그 사람 없이 살 수 있을까... 그 사람은 나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 잊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 가연은 제훈을 기억에서 몰아내기 위해 그와 함께 하면 힘들 일들을 생각하며 그를 향한 마음을 묻어버리려고 전화기를 들다가도 내려놓고 미치도록 그리울 때면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참아냈습니다.

"가연아... 많이 힘들면 네가 먼저 연락해보렴... 네가 싫어서 널 밀어낸 게 아닌 거 알잖아, 널 힘들게 할까 봐 널 많이 사랑해서 포기한 거야."

가연은 아빠의 말을 듣고 정말 힘든 게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며 지금 제훈을 만나러 갑니다.

도착시간 30분을 남겨놓고 제훈에게 톡을 남깁니다.

실망하지 않기 위해 기대도 하지 말자라며 출발했지만 제훈이 머무는 부산이 가까워오자 꼭 만나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얼마나 그동안 그리워했는지 더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읽고 답이 없는 제훈에게 다시 긴 글을 남깁니다.

“사랑은... 기쁘고 즐겁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행복하려고 하는 거야. 눈물 나고 힘들고 아파도 그 속에 함께 하는 행복이 있다면 그 행복을 위해 함께 울고 힘든 짐을 나눠지고 아픈 것도 참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

오빠가 없는 지난 1년의 시간은 오빠가 없는 삶이 얼마나 불행할 수 있는지를 알게 한 시간이었어. 나오던, 나오지 않던... 지금 어떤 상황이든... 내가 오빠를 생각하는 그 마음처럼 오빠도 나를 여전히 담고 있다면 얼굴이라도 한 번 보여주면 좋겠어...”

제훈을 향한 마음을 보내며 가연은 제훈의 마음이 1년 전과 같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에는 그 사람을 그렇게 보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도착한 부산역에는 제훈 대신 제훈의 동생 제철이 가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누나 오랜만이에요”
제철을 따라 국제시장을 향합니다. 그곳에는 생선가게 주인이 된 제훈이 건강한 모습으로 가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휠체어 신세를 지는 장애인이 되셨지만 더 이상 병원에 누워 있지 않아도 될 만큼 건강도 좋아지셨습니다.

다시 만난 가연과 제훈.  ⓒ 최선영
▲다시 만난 가연과 제훈. ⓒ 최선영
“잘 살고 있었네... 잘 살고 있기를 바라고 왔는데... 왜 서운한 마음이 들지?”

“1년 동안 죽을 힘을 다해 살았어. 아버지 친구분이 외국에 계시다 들어오셔서 우리 사정을 보시고 이 가게 자리를 얻어주셨어. 너 고생시키지 않을 만큼 자리 잡히면 찾아가려고 했었어. 그때까지 네 옆에 아무도 없다면... 아니 없기를 바라며...“
제훈은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떨구며 말합니다.

“그게 언젠데? 고생시키지 않을 만큼이 언젠데...그런 마음이었다면 처음부터 떠나지 말았어야지.”
가연은 눈물을 보입니다.

“아버님 장애 입으시고 네가 힘들었을 텐데... 우리 아버지까지... 그리고 내 동생들... 여러 가지로 너에게 너무 큰 짐을 지우는 것 같아서 그때는 널 떠나는 게 널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었어.

그리고 많이 후회했지만... 후회의 시간을 보내며 꼭 너에게 다시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래서 죽을 만큼 열심히 살았어.”

“장애 때문에 아빠와 함께 하는 게 힘들다는 생각 한 번도 한 적 없어...아빠는 내가 살아낼 수 있는 힘이었고, 지금 오빠 앞에 먼저 찾아와 설 수 있는 용기였어.아빠와 함께 해 봐서 아마 아버님도 더 잘 모실 수 있을 거야. 그리고 한 번도 오빠 동생들이라고 생각한 적 없어 내 동생들이라고 생각했었어 난.”

제훈은 가연을 보며 세상에 너 같은 여자는 없을 거라며 안아줍니다.

사랑은 환경이나 조건이 만들어주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보다는 조건부터 앞세우는 사람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가연의 선택이 드라마에서나 나올 것 같지만, 아직은 사랑 때문에, 힘든 길을 웃으며 걸어가는 사람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 겨울이 따뜻해집니다.

활짝 웃고 있는 가연과 제훈.  ⓒ 최선영
▲활짝 웃고 있는 가연과 제훈. ⓒ 최선영
다시 만난 가연과 제현은 아름다운 사랑을 하며 행복을 만들고 채워갑니다.

휠체어를 타는 두 아버지를 모시고 이제는 제법 제 몫을 해주는 동생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이들의 사랑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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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최선영(faith199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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