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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꿈, 그리고 두 번째 꿈을 위해
지체장애 2급 이도상씨①
어린 시절 꿈은 돈 많이 버는 사업가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5-05-13 16:47:231
이도상씨. <이복남 기자>
▲이도상씨. <이복남 기자>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 40~50대 사람들이라면 '보이즈, 비 앰비셔스'를 되뇌이며 어린 날의 꿈을 키웠을 것이다.

이 말은 '윌리엄 클라크'라는 미국인이 일본의 북해도 개발을 위해서 1876년 삿포르에 농림학교를 세우고 1년 뒤에 떠나면서 남긴 말이라고 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 나름대로의 꿈과 야망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한다. 어린 시절의 꿈을 키우면서 그 꿈을 이루는 사람들도 있고, 나이를 먹으면서 꿈은 수시로 바뀌어 어른이 되었을 때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경우도 있고, 꿈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다가 늦게 서야 어린 시절의 꿈을 성취하는 등 사람의 일생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런데 어린 시절의 꿈을 키워나가다가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면서, 제2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다. 이도상(52)씨는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외궁리가 고향인데 마이산 자락 아래에서 아버지 이만수(작고)와 어머니 이옥선(83)씨 사이에서 7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났다. 형이 여섯이고 아래가 막내 여동생이다.

아버지는 가난한 농사꾼이었고 7남매 공부시키기에도 벅찼으므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사업가를 꿈꾸었다. 마령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대학진학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출신의 가난한 농촌 청년이 농사 외에는 할 게 없었다.

집안 농사일을 거들면서 파출소 급사로 1년쯤 일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돈을 벌 수가 있을까. 사업가의 길은 험난하고 멀어 보였다. '그래 독립을 하자' 독립의 첫 걸음으로 운전 면허를 땄다. 그 무렵 좋아하는 아가씨가 있었는데 부모님을 졸라 결혼을 하였다. 결혼을 하고 그의 아내 최경숙(51)씨와 제주도로 밀감장사를 하러 갔다.

처음에는 밀감장사가 제법 잘 되어서 돈도 좀 벌었다. 삼년째 되는 1981년 3월, 성산포 항에 서 밀감 340상자를 실었는데 태풍주의보가 내렸다. 며칠씩 배가 항구에 묶여 있었으니 나무상자에 담긴 밀감은 폭삭 썩고 말았다. 몇 번 그런 일을 당하면서 그동안 벌었던 돈은 다 까먹고 빈털터리가 되어 부산으로 나왔다.

부산에는 큰 형님이 살고 있었다. 형님네에서 백수로 빈둥거리다가 아는 사람이 경찰시험을 준비한다기에 같이 공부를 했고 시험을 쳤다. 그런데 막상 합격을 하고 보니 자신의 꿈은 경찰이 아니라 사업가였다는 것을 되새기며 경찰을 포기했다.

그리고는 형들을 졸라 1천만원을 빌려서 중고 트레일러 한대를 샀다. 트레일러 한대를 가지고 물류회사에 지입제로 들어갔다. 부산항에 물건을 실어다 주고, 부산항의 물건을 다른 지방으로 실어 날랐다. 영업, 배차, 운송 등 물류분야를 조금씩 익혀 나가면서 성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일한 덕분으로 5년만에 독립을 했다.

독립이래야 그가 사장이자 기사였고, 그 동안 익힌 노하우와 성실함으로 구성된 인적 네트워크가 밑천의 전부였다. 화주들이 부르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지 달려갔고 정확하고 신속한 운송을 위해 최선을 다 했다. 회사는 날로 발전하여 트레일러는 한 대가 두 대 되고, 두 대가 석대가 됐다.

그는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어 가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몰랐다. 그러나 호사다마라 했던가. 그러던 어느 날 날벼락을 맞게 됐다. 이도상씨 이야기는 ②편에 계속.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누구나기자로 현재 하사가장애인상담넷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복남 기자(ablenews@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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