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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안실과 응급실을 오가며 다시 본 세상
지체장애 2급 이도상씨②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5-05-16 10:44:561
대경직원들 오른쪽 두번째가 이도상씨. <이복남 기자>
▲대경직원들 오른쪽 두번째가 이도상씨. <이복남 기자>
1994년 12월 27일. 트레일러 한대가 타이어에 바람이 빠진 것 같아 트레일러 기사와 함께 근처에 있는 타이어 수리점으로 갔다. 타이어 수리공이 콤푸례샤로 바람을 넣고 있었고 그와 기사는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런데 펑! 타이어가 폭발을 한 것이었다. 그는 10m쯤 퉁겨 나갔다. 타이어 수리점은 재송동이었는데 피투성이로 동구 초량에 있는 침례병원으로 실려 갔다. 퉁겨나가 떨어지면서 팔 다리는 박살이 났고 머리에서도 피가 흘렀다. 그를 살펴 본 의사들은 가망이 없다고 했다.

놀라 달려 온 아내는 기절을 했고, 사람들은 장례식을 준비를 해야 했다. 아내와 형님은 아는 사람이 있는 메리놀병원에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그는 다시 메리놀병원으로 옮겨져 사망판정을 받고, 영안실로 내려갔고 장례 준비는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었을까. 영안실에서 시체를 냉동실로 넣기 전 마지막 검안이 있었는데 검안하던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급기야 응급실로 연락을 하고 그의 사망판정은 보류되었다.

그는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나 의사들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와 가족들에게는 피를 말리는 나날들이 계속되었는데, 그가 다시 살아나기를 바랬다기 보다는 장례일자가 하루 또 하루 연기되는 것에 초조해 하였다.

그러나 기약이 없을 것 같았던 기다림이 그렇게 오래 가지는 않았다. 26일만에 그가 눈을 뜬것이다. "눈을 떠보니 몸뚱이와 손발은 꽁꽁 묶여 있었습니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조치였다. 그제야 의사들은 수술을 준비했는데 1차로 뇌수술을 했고, 다음은 다리 수술 차례였다.

그는 자기 의사를 표현할 상태가 아니었고, 의사들은 목숨이 붙어 있는 것만도 다행이니 다리는 자르자고 했다. 가족들은 다시 한번 오열했다. 아내와 형들은 심사숙고했고 이왕 죽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니 나중에 안되면 그 때가서 자르겠다는 각서까지 쓰고 다리 수술에 들어갔다. 다음엔 팔을 수술하고. 그렇게 시작 된 수술은 아홉 번이나 했다.

이제는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병원비가 문제였다. 타이어 수리점에서는 아무 것도 보장이 되지 않았고 어떻게 해줄 형편도 못되었다. 3년 동안 지리한 법정 싸움으로 4억여원의 보상 판결을 받기는 했으나 수리점 업주는 돈이 없었기에 그가 받은 4천6백만원은 소송비용에 불과 했다.

그가 없으니 회사를 운영할 수도 없었지만 병원비 때문에도 회사를 정리했다. 아내는 재송동에 있던 집도 팔고 영도에 단칸 전세방으로 이사를 했다. 그는 남매를 두었는데 누나(30)가 남동생(27)을 챙기며 저희들끼리 살고 아내는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따듯한마음재단 봉사자들 오른쪽 첫번째가 이도상씨. <이복남 기자>
▲따듯한마음재단 봉사자들 오른쪽 첫번째가 이도상씨. <이복남 기자>
수차례의 수술 끝에 정신을 차리고 병원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그는 또 다른 세상을 보게 되었다. 환자나 가족이 아님에도 병실을 찾아오는 낯선 사람들이었다. 다치기 전 그의 꿈은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버는 사업가였고, 그 꿈을 위해서 옆도 뒤로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 왔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병실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은 그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으니 그들은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자원봉사자! 자원봉사자들은 병원으로 환자들을 실어 왔고, 퇴원하는 환자들을 집까지 데려가기도 했다. 호스피스라는 사람들이 중환자들의 말벗이 되어 주기도 했고, 자원봉사자 간병인도 있었다. 돈이 되지도 않는데, 자기 시간, 자기 돈을 들여서 저런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구나. 그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기에 그것은 충격이었다. '나도 퇴원해서 나가기만 한다면 저런 일을 해 봐야지.

그렇게 또 다른 희망과 꿈을 가지게 된 덕분인지 중증장애인들이 흔히 겪게되는 실의나 자살시도는 없었고, '빨리 나아서 나가야지' 오히려 의지를 불태웠다.

병원생활 3년. 의사는 퇴원을 해도 된다고 했다. 다시 바깥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그 동안 눈 여겨 봐두었던 부산장애인종합복지관에 전화를 해서 자신이 퇴원을 하는데 집까지 좀 데려다 달라고 했다.

차량 봉사자가 왔고 그는 봉사자의 차를 타고 처음 가보는 영도 집으로 갔다. 통원치료를 하는 동안에도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목발을 짚고 있었는데 자신도 빨리 나아서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무리를 한 탓인지 다리가 부러졌다.

다시 입원을 하고 또 수술을 하고 4개월만에 퇴원을 하면서 역시 봉사차량을 이용했다. 언제든지 부르기만 하면 달려 와 주는 자원봉사자, 너무나 멋진 일인 것 같았다. 자신도 자원봉사자가 되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그러나 걸을 수가 없었으므로 차를 한 대 사려고 하니, 장애인등록을 하면 세금 감면 등 여러 가지 혜택이 있다고 자원봉사자들이 알려주었다. 신경외과 정형외과 등 여러곳을 거쳐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다리를 자르지는 않았지만 무릎을 굽힐 수도 없었고 목발 없이는 한발짝도 걸을 수가 없었기에 승용차를 타기는 무리인 것 같았다. 봉고차를 한대 마련하고 장애인복지관으로 갔다. 이도상씨 이야기는 ③편에 계속.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누구나기자로 현재 하사가장애인상담넷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복남 기자(ablenews@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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