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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환의 장애인물전 - 최옥란 열사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9-05-16 08:35:031


<장애인물 톺아보기>

우리 사회에 뜨거운 한 획을 그은 장애 인물과 그의 열정적인 인생을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장애인물 톺아보기>. 에이블뉴스 백종환 대표 함께 합니다. 어서 오세요.

질문1 : 오늘 소개해 주실 분은 누구입니까?
답변 : 뇌병변 장애 1급, 여성 장애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자였던 최옥란씨입니다.

우리 장애계에서는 그녀를 열사라 부르고 매년 그녀의 기일에 추모제를 지내고 있는 분입니다. 오늘은 최옥란 열사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질문2 : 기일에 추모제를 지낸다 하면 돌아가셨다는 말씀인데요?
답변 : 그렇습니다. 최옥란 열사의 삶은 장애인분들의 삶의 한 표본이었고, 그 어려운 삶에서의 탈출을 위해 스스로 투사가 되어서 우리 사회에 강렬한 메시지를 유서로 남기고 삶을 마감하셨던 분이었습니다.

최옥란 열사의 삶의 궤적을 조금 설명드리면요.
그녀는 기지촌에서 자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최옥란 열사는 2녀 1남의 3남매는 한분의 어머니였지만 아버지는 모두 달랐고요. 거기다가 오빠는 백인 혼혈인, 여동생과 장애가 있는 본인까지 기지촌에서의 생활은 어렸을때부터 모욕과 편견속에서 성장했던 것으로 전언되고 있습니다.

질문3 : 최옥란씨는 어른이 될 때 까지 기지촌에서 살게 되나요?
답변 : 그렇지 않습니다. 사춘기가 될 나이 열 여섯 살에 기지촌 집에서 나오게 됩니다. 가출을 하게 되는데요. 가출을 해서 스스로 사회복지시설에 들어갑니다.

가출했던 나이 열 여섯 당시에 그녀는 뇌성마비 1급이 아니고 5급이었습니다. 뇌성마비 5급이면 일상생활을 하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는 정도의 장애인데요.

그렇게 시설에서 지내다 만 18세가 되면 시설에서 나와야 하니까 시설을 나와서 악착같이 일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어눌한 말에 거동이 쉽지 않고 했지만 노점에서 좌판을 벌이고 하루하루를 이어나갑니다.

질문4 : 그런데 어떻게 투사로 불리게 됩니까?
답변 : 노점을 하면서도 배우고 싶은 열망에 검정고시를 준비하게 되는데 검정고시 모임에서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됩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준비한다면서 정부에서는 도시 재개발을 하면서 미관에 좋지 않았던 산동네, 달동네들을 무차별적으로 철거하면서 하루아침에 집을 잃어버린 철거민을 만나게 됩니다.

어쩌면 최옥란씨 본인은 자기가 최고로 불행하다 싶었던 삶이 또 다른 불행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그들의 삶을 공유하게 됩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최옥란씨는 집을 잃어버리고 농성장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맡습니다. 그 가운데 장애가 있는 아이가 있었는데,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때 그 장애아이가 남긴 한 마디가 그녀를 장애 운동가로 변신하게 만듭니다.
그 아이는 "선생님처럼 편안하게 다니고 싶다."고 한 것입니다.

계단을 스스로 넘지 못했던 그 어린 아이는 그나마 절뚝거리면서 다녔던 그녀에게 선생님처럼 걸어다니고 싶다라고 유언처럼 소망을 이야기하고 떠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장애인이동권 투쟁을 시작한 것입니다.
버스를 타고 싶다며, 세워주지 않는 시내버스 앞을 가로막고 시위를 했고요.
지하철을 타고 싶다며 선로를 점거하고 쇠사슬로 몸을 묶고 전동차를 세웠습니다.

이러한 투쟁은 지금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지만 2000년도부터 최옥란씨를 비롯한 많은 장애인들이 광화문에서 모여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최옥란씨는 장애인 운동가로 왕성하게 이른바 장애해방 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질문5 : 그런데 최옥란씨가 열 여섯까지는 장애 5급이었다고 하셨는데 처음에 소개하셨을 때 는 뇌병변 장애 1급이라고 하셨단 말이에요. 사고가 있었나요?
답변 : 사고라고 말씀드리긴 좀 애매한 면이 있습니다만 그 원인도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장애운동을 하면서 그녀에게 뜻밖의 인연이 찾아오게 됩니다.
장애인 운동 와중에 만난 사법고시 준비생과 사랑에 빠진 겁니다. 사랑했던 남자친구는 한쪽팔에 장애가 있었던 분이었는데요. 서로 사랑했기에 아이도 생겼고 해서 결혼하려 합니다.

하지만 시댁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히게 되는데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결혼하려면 통과의례처럼 가족들의 반대로 어려움이 있지만 서로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본인의 장애보다 조금이라도 덜한 장애 배우자을 얻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기대로 최옥란씨 역시 잔인하다 싶을 만큼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고요.

그래서 아이를 가졌었는데 결국 임신중절수술을 받습니다. 뇌성마비 장애가 있기 때문에 전신마취를 하고 임신중절수술을 받게 되는데요. 뇌성마비 장애인에게 전신마취는 아주 치명적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결혼도 하고 아들도 낳습니다.
반대해서 결혼한 만큼 시집살이는 그야말로 말로 하기가 쉽지 않았고요. 스트례스가 심해던 탓일까요? 아니면 아들을 출산하면서 마취 후유증 때문일까요? 보행에 별로 지장이 없었던 그래서 장애등급이 5급이었는데 제대로 걷지 못하고 쓰러지고 만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도 시어머니는 집안 청소를 하던 그녀에게 칼을 던지면서 목숨 끊으라고 강요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 일로 인해서 최옥란씨는 실어증까지 동반하게 돼서 애초에 장애등급 5급으로 생활하는데 크게 불편함이 없었는데 1급 중증 장애인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질문6 : 시집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면 남편이 많이 도와 주는데요?
답변 : 저도 오랫동안 기자활동을 해 오면서 많은 장애인들을 만났고 그 사연들을 참으로 많이 들은 경험을 갖고 있는데요.

장애가 없는 가운데 살다가 중도에 한쪽이 장애를 입는 경우에 헌신적으로 지지해주고 내조를 해주는 경우도 있기도 하지만 헤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서로가 장애가 있으면서 결혼한 경우는 서로가 서로에게 많이 의지도 하고 돕고 하거든요. 최옥란씨도 남편과 열렬하게 사랑했고 그래서 어려운 가운데 결혼했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보통의 경우 말씀하신 것처럼 남편이 도와주는데요. 남편은 곧 이혼을 요구합니다.

질문7 : 남편이 이혼을 요구한 것은 시어머니와의 불화 때문이었을까요?
답변 : 남편이 이혼을 요구한 것은 가정불화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다른 여자가 있었고요. 그래서 최옥란씨는 이혼 소송으로 위자료와 아들을 볼 권리를 확보 했지만 남편은 위자료도 안 주고 아이도 보여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해서 아이를 찾아오기 위한 소송도 하고요.
워낙에 가진 재산이 없기에 아들의 양육권에 불리해서 작심해서 일을 합니다.
물론 장애인 이동권 투쟁도 빠짐없이 진행하면서 장애인 운동가로서 그 동력을 잃지 않으려 장애인 투쟁현장에는 언제나 그녀가 선봉에 있었습니다.

질문8 : 장애투쟁 현장에서 선봉에 섰다고는 했습니다만 어떻게 갑작스럽게 열사가 되는 반전이 일어나나요?
답변 : 이혼을 하고 혼자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국민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데요.
이때가 2001년인데요. 그녀가 받았던 생계비는 26만원이었습니다. 26만원은 월세와 약값을 내기에도 부족한 돈이었습니다.
살기 위해서, 그리고 아들의 양육권을 찾기 위해서 다시 노점을 시작했지만요.
소득이 월 33만원을 넘을 경우, 그리고 통장에 잔고가 있을 경우 국민기초생활수급자의 자격을 박탈한다는 담당 공무원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입니다.

장애로 인해 의료보호가 절실했던 그녀는 수급권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병원비를 감당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임대아파트에서 월세로 살았는데 수급자가 아니면 임대아파트도 비워줘야만 했기 때문에 결국은 노점상을 포기하게 됩니다.

돈 버는 것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죠.
돈 버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아들을 데려오겠다는 것도 포기하는 것과 다름아니었던 것입니다. 아들의 양육권을 찾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했는데 일을 하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질문9 : 이러한 사회적 모순으로 인해 이른바 장애인 투사가 되는거군요?

답변 : 그렇습니다. 살기 위해서 일을 했던 그녀가 일을 하면 살 수 없는 사회적 구조로 인해서 최옥란은 놀랍게도 목숨을 걸고 정부와 싸우기 시작하면서 말씀하신 것처럼 투사로 변신하게 됩니다.

2001년 12월 3일, 세계장애인의 날이기도 했는데요. 최옥란씨는 ‘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요구하면서 명동성당 입구에 텐트를 치고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농성을 통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빈민들의 생계를 보장하지 못하는 현실을 언론이나 시민들에게 호소했고요. 이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보건복지부 장관 집에 방문해서 생계급여로 받았던 26만원을 반납하기도 했습니다.

한 겨울 노숙하면서 여성 장애인 최옥란씨의 농성은 세계장애인의 날에 즈음해서 많은 언론에 조명을 받았고요.

그리고 IMF 이후 생활보호대상자를 지원했던 생활보호법을 폐지하고 국민 누구든지 빈곤층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한다며 제정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었는데요. 월수입이 33만 원 이상이면 수급권을 유지할 수 없다란 제도의 맹점을 우리 사회에 고발한 것이 사회적으로 크게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농성 후 얼마가 지났을 즈음, 2002년 2월에 동사무소로부터 수급권 재심사 명목으로 소득과 재산을 신고하라는 통보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녀는 아들의 양육권을 되찾기 위한 소송을 준비하면서 양육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통장에 700여만원이 있었는데요.

이 700만원 때문에 수급권이 박탈당할 위기에 놓이자 그녀는 자살을 시도합니다. 다행히 바로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입원한지 5일만인 2002년 3월 26일에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녀의 유서에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대통령께 보내는 내용이 있었는데요. 다음과 같이 써 있었습니다.

“대통령님도 장애인이면서 현재 시행하고 있는 법이 저의 작은 꿈들을 다 잃게 했습니다. 노동도 할 수 없는 장애인이 그나마 노점에서 장사해 돈을 좀 벌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의 아들을 찾으려고 힘이 들어도 참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 조차 장사도 못 하게 해 이제는 더 살 수 없는 심정입니다.”라는 유서를 남겼습니다.

질문10 : 그럼, 최옥란씨가 세상을 떠나고 그 이후 최저생계비와 관련한 제도에 변화가 있었습니까?

답변 : 물론 최옥란씨가 뜻을 이루지 못했던 빈곤층의 문제는 여전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대통령 선거에서도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빈곤층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는 공약을, 더 구체적으로는 국민기초생활 수급자의 조건들을 없애겠다는 공약들이 단골 메뉴처럼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다 아시는 것처럼 공약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빈곤층의 생활도 결코 나아지지 않았고요. 송파 세모녀처럼, 그리고 최옥란씨처럼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빈곤층들이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옥란씨가 투쟁했지만 못다 이룬 투쟁을 계승하겠다며 장애인단체, 빈민단체, 시민사회단체들이 나서서요. 해마다 추모제를 통해 최옥란씨를 최옥란 열사로 칭하고 지속적으로 빈곤 문제를 이슈화하면서 최저생계비 지원이 현실화 되어야 한다는 문제가 사그러 들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은 그녀의 투쟁의 뜻을 계승하겠다며 광화문에서 텐트를 치고 1842일 동안 농성을 했습니다.

그 결과 최근에는 좀 더 다른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30일이었는데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비수급 빈곤층 등 빈곤 사각지대 완화를 위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의 구체적인 방안 마련 등 제도개선을 위한 사회적 논의와 부처 간 협의에 더욱 속도를 높이겠다”고 말했습니다.

질문11 : 정부의 발표를 믿을 수 있을 만큼의 근거가 있습니까?

답변 : 정부의 발표가 곧 실행될 것으로 보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단지, 그동안 장애인단체들이 장애인 빈곤층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요구해 온지 5년을 넘게 농성을 해 왔지만 정부의 책임있는 답변들이 거의 없었습니다만 현 보건복지부 장관은 농성장을 찾아와 약속도 했고요.

관련 TF팀도 만들어 함께 참여해서 의견을 개진하도록도 했고요. 또한 장애인단체의 의견을 경청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를 믿어보기로 한 것입니다만 예산이 상당히 동반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속도의 차이가 있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최옥란 열사와 같은 빈곤층, 송파 세모녀와 같은 비수급 빈곤층이 2018년 기준으로 93만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아직도 갈 길이 멀기는 하지만 다른 때보다는 정부가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라고 복지 관련 전문가들의 평가이기도 합니다.

17년전, 빈곤층 특히 장애인 빈곤층 대책을 요구하면서 본인의 생명까지 던지 최옥란 열사의 바램이 이제는 조금씩 이뤄져 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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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빈 기자(marchy@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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