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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조직’, ‘조직과 개인’ 그리고 사람 중심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9-01-09 16:52:551
서울지역장애인소비자연대 안형진 집행위원장. ⓒ에이블뉴스
▲서울지역장애인소비자연대 안형진 집행위원장. ⓒ에이블뉴스
촛불 집회가 한참인 2016년 겨울로 기억된다. 나도 매주 안식일(토요일)이면 오전에 예배를 드리고 좀 쉬었다가 늘 광화문으로 나갔다.

그 날도 늘 그렇듯이 촛불집회를 끝나고, ‘박근혜를 감빵으로, 최순실을 감빵으로~“ 이 노래를 되부르면서 집에 오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 이유 없이 내 머릿속에 쓰윽 지나치는 생각이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잠재적인 박근혜 최순실이 아닐까?”라는 생각이었다. 물론 이것이 극단적일 수 있는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 당시에 내 머리에 드는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쫓게 되고, 그것이 보편화가 되면 우리가 “정의”라고 명명되어지는 무언가가 된다. 굳이 물질적인 이익이 되지 않아도, 그것에 대한 공감과 정서적 동감이 일반화 되면 그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목표가 되고 이루어야 할 소중한 것이 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생각과 관점이 다른데, 자신과 다른 생각과 관점을 들으면, 이질적으로 느끼거나 좀 더 심하면 적대시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물론, 박근혜와 최순실에 비유하는 것은 지극히 극단적일 수 있지만,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고, 자신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쫓고 그것과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배타적으로 보거나, 경쟁적으로 보는 것은 그들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갖는 공통적인 속성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우리 모두는 잠재적인 박근혜와 최순실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그날 지하철에서 갑자기 나의 머리에 스친 것이었다.”

그 후로 논문을 준비하면서 자립생활과 인권, 사람중심(Person-centered)에 대한 철학적 연구를 하게 되었고, 특히 「정의론」의 저자인 존 롤즈가 주장한 불편부당성 이론(쉽게 말하면, 편 가르기 하지말자)을 접하면서 개인과 조직에 대해 좀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야기를 좀 해보고자 한다.

인간은 자신과 같은 신념과 철학(종교), 가치를 추구하거나, 물질적이거나 권력적 성과를 이루기 위해 두 명 이상 모이고, 그것이 조직이 된다.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는 영리조직은 여기에서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비영리적인 사회운동 조직도 ‘동지(同志)’라는 표현을 하면서 정서적 유대를 강조하면서 조직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면서 이것이 사회를 진보(進步)시키는 원천이라고 말해 왔다.

이것이 이제까지의 사회운동의 조직관이었다. 그러나 조금만 밖으로 나와서 생각해보면 이러한 생각 자체가 비인간적이고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 명 이상이 모였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배제와 분쟁을 낳을 가능성을 매 순간 안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1초라도 정지되어 있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1초, 1초 매순간 생각을 하고, 움직이는 생물체이다. 이러한 인간이 나와 다른 존재와 같은 생각과 같은 목표를 추구할거라고 규정하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고, 개인의 다양성과 존엄성을 배제하려는 비인간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직은 ‘필요 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원천으로 조직은 개인을 억압하는 기재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인간은 혼자서는 무언가를 이룰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필요 악’적인 조직을 조금이라도 선(善)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많은 것들이 필요하겠지만, 여기에서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조금이라도 ‘정치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변하는 노력을 했으면 한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인간이 조직을 만드는 원초적인 동기는 같은 신념이나 가치 등의 비물질적인 것이나, 돈이나 정치권력 등의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서 타인과 경쟁하거나 배제하거나, 어쨌든 타자를 흔한 표현으로 “재껴야 한다.” 그리고 조직은 그것이 지향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개인의 다양한 생각과 선호는 ‘통일(統一)’되어야 한다. 이것부터가 비인간적이다.

요즘 장애운동단체나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분들과 사석에서 만나면 “요즘 세상이 바뀌어서 장애인들도 아쉬울 게 없나봐. 장애인들이 안 모여. 어떻게 해야 되나?”라고 하소연을 듣게 된다.

그러면 나는 “장애해방이 서서히 오고 있는 거예요. 오히려 좋아해야 않을까요?” 라고 너스레를 떨곤 한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 너스레가 아니라, 진심이다. 장애해방은 서서히 오고 있고, 장애인도 인간이기 때문에 예전처럼 투쟁만이 아니라, 나의 삶을 살 수 있는 여건이 점점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장애인 개인의 삶이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그렇게 목 놓아 외치던 장애해방이 오고 있는 거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그것에 기뻐하지 못하고 또 다른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 글은 서울지역장애인소비자연대 안형진 집행위원장이 보내 왔습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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