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맡고 있는 아이들. 이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두고 떠나야 한다니, 아내에게는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샘

버클리 대학에서 우편물이 도착했다.

미국 대학에 응시하고 우편물을 받을 때 두꺼우면 합격, 얇으면 불합격이다. 불합격이면 아쉽게도 합격하지 못했다는 편지 한 장 달랑 오는 것이고, 합격하면 이것저것 작성할 것이 많아 두꺼워지는 것이다.

두툼한 메일을 받아 든 마음이 뿌듯하기 그지 없다. 성적이 최고이고, 봉사, 학교 내에서의 활동 등이 두드러져 당연히 합격할 것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합격증을 받아드니 기쁘기 그지 없었다. 명문 버클리 대학생이 된다는 생각에 잠을 설쳤다.

주변에서도 함께 기뻐해 주었다. 가족은 물론이고 학교의 교수, 친구, 주변의 지인들까지 만학의 기쁨을 함께해 주었다. 특히 내가 학업에 성공할 수 있도록 긴밀하게 지원해준 정부의 카운슬러는 나보다 더 기뻐하며 축하해 주었다.

기쁨도 잠시, 막상 학교에 가려니 걸리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내가 사는 곳은 남가주이고 버클리 대학은 북가주에 있는데, 거리만도 자동차로 여덟 시간이다. 정든 지인들을 멀리하고 간다는 것도, 작 적응하고 있는 아이들이 옮겨가는 것도, 생활의 기반이 닦여진 곳을 버리는 것 등, 모든 것이 여의치가 않았다. 그렇다고 장애의 몸으로 혼자 갈 수도 없는 일이고…….

한참을 고민 끝에 일단 시작하는 학기를 늦추기로 했다. 보통 가을에 학기가 시작되는데 겨울 학기로 미루어 달라는 편지를 학교에 보냈다. 그 편지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당시는 몰랐다. 잘못하면 합격이 취소되어 버린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았다. 그러나 내 높은 성적 때문인지 학교에서는 한 학기 늦추는 것을 허락했다.

반년 동안 이런저런 일을 정리하면서 살던 장소를 옮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절감했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몇 번씩 들 정도로.

그러나 이 귀한 기회를 버릴 수 없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실행에 옮겼다. 아이들에게, 그리고 아내에게는 더 없이 미안했다. 아빠의 뜻을 이루겠다고 정든 곳, 정든 친구들을 버리게 하다니.

역시 공부는 젊어서 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돌볼 가족이 없고 혼자서 마음대로 결정해도 되는 시기에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렇게 걸리는 것이 많아서야.

아무튼 마음에 걸리는 것은 걸리는 것이고 학교는 가야 하는 것이기 정리할 것을 하나하나 정리해 갔다. 나중에는 어서 학교에 가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지치도록 이어지는 송별회, 이것도 한 때거니 싶어 부르는 대로 나가 식사를 하고 정담을 나누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마주하기 쉽지 않은 사람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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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지체장애인으로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사회학과를 졸업, 미국 탐 하킨 상원의원 장애국 인턴을 역임했다. 또한 서울장애인체육회 워싱턴 통신원, 서울복지재단 워싱턴 통신원,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다. 출간한 수필집 ‘사랑, 그 빛나는 조각들’은 1992년 올해의 우수도서로 선정됐으며, 2009년에는 워싱턴 문학 수필부문 가작에 당선됐다. 각종 미국 장애인 소식을 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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