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연말, 한국수화언어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들의 생일을 보면 거의 상당수가 연말이다. 대수의 법들이 연말 국회 회기 마감을 앞두고 무더기로 통과되기에, 마치 숙제를 미뤄뒀다 한 번에 해치우는 것처럼 법 제정일들이 연말이 많은 것이다.

한국수화언어기본법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었다. 18대 국회에서 윤석용 의원이 수화법안을 마련하였으나 법제조사처와의 의견조율을 마치지 못하여 사장되고 말았던 적도 있었다.

그 당시의 법안을 그대로 살려 가장 먼저 법안 발의를 한 것은 이상민 대표발의안인 ‘한국수화언어기본법안’이었다.

이 법안은 제안이유에서 청각장애인은 수화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데 의사소통과 학습에 많은 제약이 있어 이로 인하여 차별과 소외에 놓이게 되므로 외국과 같이 법안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법안의 내용을 보면, 수화는 국어와 동등한 자격임을 밝히고, 정책수립을 의무화하였다. 5년마다 수화발전기본계획을 수립하고, 한국수화언어심의회의를 두고, 연구소를 운영하며, 표준화와 교재개발과 전문가양성, 수화교육 방안을 갖추도록 하였다. 그리고 관련 단체나 법인에 예산을 지원하고 수화통역서비스센터를 운영하며, 통신망 이용에도 어려움이 없도록 정책을 수립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상민 발의안이 2013년 8월에 나오자, 정우택 의원 대표발의안이 10월 8일 발의되었는데, 이는 농아인협회가 아닌 다른 장애인 권리를 옹호하는 단체와 협의하여 마련된 것이었다.

수화를 또 하나의 언어로 인정하고, 교육·사회·문화·예술·체육에서 농인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하며 비장애인도 수화를 배우도록 하여 통합사회를 만드는 것을 제안이유로 하였다.

법안 내용에서는 공식 언어로 인정하고, 5년마다 발전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연구를 위탁하여 할 수 있도록 하고, 표준화와 교육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비장애인을 위한 교육과정을 설치할 것을 골자로 하였다. 전문가 양성사업과 단체지원 조항은 이상민안과 유사하다.

이어서 이에리사 의원이 대표발의한 한국수어법안은 10월 22일에 발의되었는데, 제정이유를 보면, 국어기본법이 있듯이 수어법이 필요하며, 수어는 공식언어로 인정되어야 하고, 교육과 취업, 일상생활에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여 사회참여를 증진하고자 하였다.

법안 내용을 보면, 수어는 고유언어로서 농인은 수어로 교육받을 권리가 있으며, 5년마다 발전 기본계획수립과 연구소 설치, 수어심의회 운영, 농학교 수화교사 배치, 수어교원 양성, 수어통역지원과 단체 지원을 명시하였다.

이 법안은 농아인협회의 의견을 수렴하고 조정한 법안으로, 비장애인의 수화교육을 막연한 의무로 하지 않고 교육과정과 교원양성이라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고, 학교에서의 수화교육 인력배치와 교육과정을 의무화한 것이 특징이라 할 것이다.

11월 26일 정진후 의원은 수화언어 및 농문화 기본법안을 발의하였다. 이 법안은 정부, 학계 등과 소통하며 마련된 법안으로, 제정이유에서 수화언어는 공식언어가 되어야 하며 열약한 언어환경을 개선하여 사회참여와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한다고 제정이유에서 밝히고 있다.

법안 내용을 보면, 수화언어와 농문화 발전 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심의회와 수화언어문화원을 두고, 장애발생 초기부터 수화를 배우도록 하고, 재화와 용역에서 수화와 문자통역을 제공하며, 수화교육과정을 제정하고, 문화·예술에서 농문화를 장려하고, 관련 단체를 지원하도록 하였다.

이 법안은 농문화를 법안에 도입하였으나 농문화에 대하여 깊이 있는 내용을 담지 못하였으며, 수화가 아닌 문자서비스 등 포괄적 서비스를 담으려 하였다.

이 네 가지 법안이 대체입법되어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의 명의로 단일 법안이 마련되었는데, 수화언어를 줄여 수어라고 정한 것, 수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공용어임을 밝히고, 수어의 교육·보급 외에 홍보라는 문구도 추가되었다.

그리고 5년마다 수어발전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언어권 보장과 수어환경 개선을 하도록 하였으며, 교육문화체육관광부장관만이 아닌 중앙부처 장관과 시·도 지자체가 연간계획을 통하여 이 계획을 성실히 이행하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3년마다 실태조사를 하도록 하였다.

수어서비스 지원과 교육환경 구축 등을 정하였고, 연구소 설치 등 구체적 규정은 피하고 지속적 연구를 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단체나 법인의 예산지원도 포함되었다.

수어는 농인의 공용어라 하였다. 대한민국 언어의 공용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농인의 공용어라 하였는데, 모든 공용어로 사용하여야 하는가의 문제는 농인의 대상이 있는가가 기준이 되게 된 셈이다.

농문화와 농정체성에 대한 정의를 하였는데, 농문화는 농정체성과 가치관을 가진 생활양식이라 하였고, 농정체성은 자기동일성이라 하였다.

대체법안이 마련되면서 각 법의 장점들이 거의 모두 포함되었고, 장애인단체의 의견도 거의 반영하는 수준에서 마련되었다는 것은 상당한 의의가 있다. 권리천명이나 계획수립은 법제정에서 반영이 큰 고민 없이 받아들여졌지만, 기구의 설치에는 상당히 부담스러워했음을 알 수 있다.

수화가 의무교육으로 포함되지 않았지만, 의무라는 표현으로 규정되지 않았지 실질적으로는 언어권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의무화와 같은 효과를 보일 것이며, 교육원도 법으로 의무화하지 않았으나 지정된 교육원에 재정지원을 하도록 하여 실현될 수 있도록 하였다.

어느 정도 구체화할 것인가와 실현 가능성과 재정적 부담 등을 감안한 조정으로 가장 현실적인 것으로 반영한 법안이 아닌가 한다.

동일 주제에 한두 법안이 발의되어 심의과정을 거치는 것이 보통이라면, 동일 법안이 네 가지나 발의된 것은 특이한 일이다. 장애인단체에서 많은 법안이 발의되면 그만큼 논의가 활발해져 좋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전략적으로 여러 의원들을 통해 많은 법안을 발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어법은 상당히 공통점이 많은 법안을 두고 누구와 협의하여 만드느냐에 따라 달라짐을 보여주었다.

이에리사 의원 발의안이 가장 장애인단체와 공감대가 높아 이 법안이 중심적 협의안이 되었으며, 무리하거나 현실성을 감안하여 조정하는 과정에서도 가장 강력하게 작용했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서로 경쟁적으로 법안이 발의되면서 미세한 차이를 가지게 되었으나 목적이나 내용에서는 서로 영향을 미쳐 문구는 상당히 유사하였던 것이다.

수화를 제2외국어처럼 수학능력시험에 교과목으로 되지 못하였다거나, 비장애인을 위한 수화교육 체계를 갖추지 못하였다고는 하나, 그러한 것을 명시하는 수준과 그러한 인력양성 체계를 갖춘 정도의 차이이지 오히려 구체적 대안은 마련한 것이 아닌가 한다.

앞으로 하위법령을 어떻게 잘 마련할 것인가와 기본계획 수립에서 당사자의 참여와 이행에서의 추진력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가 과제로 남았다.

재정의 반영에서 최소한의 지원을 하려는 정부와 최대화하려는 단체간의 협상이 남아 있다.

그리고 수어가 또 하나의 모국어이듯이 점자도 국어로 차별 없이 정보접근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질 것이다.

수어가 국어의 특수언어로서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농인의 고유언어로 인정되었다. 점자는 국어에 포함될 것인가, 고유한 글로 인정될 것인가가 주목된다.

현재 수화통역센터에서 장애인이 원할 경우, 무상으로 통역 서비스를 지원하지만, 대학 교육이나 취업현장에서 지속적인 서비스가 필요한 경우 이를 해결해 주지는 못하여 위급상황을 우선으로 지원하고 있어 앞으로 얼마나 더 지원하고 인력을 확보해야 하는지의 적정선에서도 공감대가 남아 있다.

이 법의 제정으로 재화와 용역 등에서 수어의 미제공이 장차법의 위반으로 진정되는 사법적 구제활동도 빈번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수어통역사 제도가 국가자격으로 문화부로 이관하지 못한 것도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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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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